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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롤러코스터 집값고민, 다른 나라도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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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는 200년 걸려도 못산다는 강남아파트값 해법찾기
싱가포르선 결혼 후 3년 지나면 시세 절반 이하로 아파트 분양
유럽 공공임대 비중 18%로 국내의 3배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표지.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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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체감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우리나라는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 재작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에 따라 명목상으로는 그렇단 얘기다. 법령상 기본권이 된 주거권에 대해서는 '물리적ㆍ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책임의 주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이다.
이제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한 시민단체가 서울의 강남ㆍ강북권 주요 아파트 가격추이를 따져본 결과 지난 30여년간 노동자의 연간 임금은 채 일곱 배도 오르지 않은 반면 아파트값은 강남이 260배, 강북은 126배나 뛰었다. 같은 조사에서 대한민국 가구의 연평균 저축액으로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200년이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한 분석기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PIR)은 세계 10위 수준으로 높았다. 버는 수준에 비해 집값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 주거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었단 얘기다. 임차가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폭등하는 전월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거나,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삿짐을 꾸리는 모습은 주변 장삼이사의 현실이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이 있은 지 3년이 지났지만 2017년 현재도 월세가 밀려 생을 마감하는 이가 있다.

진미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수현 서울연구원 원장이 최근 쓴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라는 책은 이러한 현실을 반추하면서 시선을 넓힐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주거복지와 국내외 주택정책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두 저자는 국내외 주택정책을 따져보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분석을 제시한다. 당초 책을 내는 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봤는데 3년이나 들었다고 한다.
적잖이 공을 들인 흔적은 책 곳곳에 묻어난다. 한 나라의 주택시장이나 정책을 표면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의 맥락 속에서 각 나라의 상황을 꼬치꼬치 들여다보면서 정리한 덕분이다. 지난해 만난 저자 중 한명은 집필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책의 얼개는 크게 세 개로 짰다. 글로벌 주택시장의 최신 경향을 열 가지로 추린 뒤 주요 국가별로 주택정책의 큰 뼈대와 역사적 맥락을 다룬다. 그리고 국내외 주택시장 변화에 맞춰 국내 정책의 현 주소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으로 끝을 맺는다. 시민 개개인이 겪는 주거문제를 시장의 원리 혹은 정책만으로 오롯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한다면 우리보다 한발 앞서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나라의 사정을 되짚어보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테다.

수십 수백년 쌓아온 선진국의 주택정책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집값에 국한해 본다면 지난 십수년간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에 속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정도의 차이를 둘 뿐 상승추세를 보였다. 실질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아일랜드의 경우 1997년부터 10년간 170% 이상 올랐다가 이후 10년은 반대로 50% 이상 빠졌다.

스페인은 같은 기간 113% 올랐다가 다시 10% 이상 떨어졌다. 선진국 집합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로 보면 앞서 10년간 40% 가량 올랐다 이후 10년은 13% 정도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편차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이 기간 한 자릿수 변동률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집값의 급등이나 급락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훨씬 덜했단 얘기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거나 혹은 반대로 떨어지는 건 주택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은 물론 대부분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국가별로 다양한 요인에 따라 집값이 오르거나 내렸던 만큼 하나의 공식을 가져다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저자는 "주택가격 상승요인이 다양하기에 올랐다고 반드시 버블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중요한 건 주택가격의 버블로 지목된 국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약성이 크게 드러난 점, 위기 후 8년이 지난 2015년에도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할 만큼 주택가격의 붕괴는 국가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굳이 주택정책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상향을 좇듯, 수십 수백년의 전통을 켜켜이 쌓아온 국가의 주택정책, 주거문화를 따져보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싱가포르에선 결혼 후 3년이 지나면 시세 절반 이하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거나 유럽에선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18%(우리나라는 5%대)에 달한다는 점,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민간임대주택에 살아도 주거안정성이 보장된다는 등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현상들을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이해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들 국가도 수많은 사회적 논의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근래 들어서는 과거부터 이어온 정책기조를 바꾸면서 실제 주거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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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주거기본법에도 명시된 내용인데,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주택정책당국이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부담능력(affordability)'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자가수요를 장려하거나 혹은 반대로 국가 주도 아래 대량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주거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변화다.

주거정책의 기본원칙을 다룬 주거기본법 3조1항은 소득수준이나 생애주기를 따져 국민의 주거비가 부담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돼있다. 주택을 공급하거나 주거비를 지원하는 게 기본 수단이다. 경제정책을 짜는 데 있어 관련 통계나 지표가 중요한 지침 역할을 하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의 PIR 지수나 월소득 대비 임차료만으로는 정교함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기업형 민간임대주택(뉴스테이)은 공적재원이 뒷받침되면서 저변이 확산되고 있는데, 부담능력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과거 고도성장기를 지나 주거권을 둘러싼 여건과 환경, 시대가 바뀐 만큼 세대를 아우르면서 부담가능한 주택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뻔한 답이라고 흘려들으면 안 된다.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과거부터 지금껏 기발한 수보다는 정석(定石)에 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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