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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배산임수 神들이 모이는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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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용산구 보광동 점집골목

서울 사람들은 점(占)을 보러 주로 보광동(普光洞)을 많이 찾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굿을 하거나 수백년 된 보호수 아래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광동은 서울의 숨겨진 속살처럼 감춰진 보석 같은 동네입니다. [그림=아시아경제 오성수 화백]

서울 사람들은 점(占)을 보러 주로 보광동(普光洞)을 많이 찾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굿을 하거나 수백년 된 보호수 아래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광동은 서울의 숨겨진 속살처럼 감춰진 보석 같은 동네입니다. [그림=아시아경제 오성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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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예로부터 인간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占)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큰일을 앞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을 쳐서 앞날을 알고자했습니다. 일이 잘 안풀리면 재물운이나 집터가 잘못돼 이사를 가야 하는지를 묻고, 결혼 전에는 궁합을 보고, 시험이나 취업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는 자녀몰래 옷 속에 부적을 넣어두기도 합니다.
실력보다 부적의 힘을 믿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점쟁이의 능력에 기대 자녀의 실력에다 '합격신(神)'의 효험까지 더해지길 바라는, 일종의 보험을 드는 셈이지요. 문명이 발달한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보다 덜하긴 하겠지만 여전히 이런 '정성'이 신을 감화시켜 도움을 주리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는 것이지요.

서울 사람들이 점보러 갈 때는 주로 어디로 갈까요? 제가 알기로는 보광동(普光洞)을 많이 찾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아직도 굿을
하거나 수백년된 보호수 아래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동네가 있을까요. 도심에서는 축제가 아닌 다음에야 씨끌벅적한 굿판(?)을 벌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굿보다 쏟아질 민원이 더 두려운 것이 현실이니까요.
보광동은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구도심이지만 풍광이 빼어난 곳입니다. 고지대인 우사단길의 어느 평범한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노을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입니다. [사진=천지민PD]

보광동은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구도심이지만 풍광이 빼어난 곳입니다. 고지대인 우사단길의 어느 평범한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노을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입니다. [사진=천지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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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숨겨진 보석 같은 동네가 많은 도시입니다. 또 알려진 동네보다 알려지지 않아서 더 고마운 동네도 있습니다. 보광동이 그런 곳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널리, 두루 빛나는 동네'지만,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서울의 속살같은 신비롭고, 포근한 동네입니다.
◈빼어난 풍광ㆍ배산임수 좋은 터에 점집거리 형성 = 보광동은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구도심이지만 숨겨진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풍광도 빼어납니다. 보광동의 가장 꼭대기라 할 수 있는 '우사단길'의 어느 평범한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노을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입니다.
보광동에는 대여섯집 건너 하나 정도는 '점(占)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 깃발이나 하얀색 깃발이 걸려 있는 집들과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내공(?) 충만한 상호들이 모처럼 강호에 출두한 무협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진=김종화기자·천지민PD]

보광동에는 대여섯집 건너 하나 정도는 '점(占)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 깃발이나 하얀색 깃발이 걸려 있는 집들과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내공(?) 충만한 상호들이 모처럼 강호에 출두한 무협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진=김종화기자·천지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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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사이의 강변을 끼고 돌아 남산으로 가는 길에 낡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70년대의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30~40년은 훌쩍 넘은 듯한 페인트 벗겨진 엇비슷한 집들이 얼기설기 뭉쳐있고, 그 사이사이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초행이라면 헤매기 일쑤입니다. 강변에서 남산까지 편도 2차선 도로 하나가 동맥처럼 쭉 오르막으로 이어집니다. 덩치 큰 파란색 버스들이 좁은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들을 피해 진땀을 흘리면서 빠져 나가는 모습이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혈관을 보는 듯합니다.

걷다보니 유달리 'ㅇㅇ선녀', 'ㅇㅇ도사'라는 간판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대여섯집 건너 하나 정도는 '점(占)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운세, 궁합, 사주 등을 봐주는 이른바 '점(占)집'들입니다. 붉은 깃발이 걸려 있거나 붉은 깃발 아래 하얀색 깃발이 같이 걸려 있는 집들이 많고, 골목 입구에서는 골목 안에 점집이 있음을 알리는 상호와 화살표가 어김없이 걸려 있습니다. 예전처럼 'ㅇㅇ철학관' 같은 무딘 명칭은 인기가 없는 듯 합니다.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내공(?) 충만한 '일월신녀', '천상부인', '공주궁' 같은 명칭들이 대로변을 장식해 마치 모처럼 강호에 출두한 무협지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보광동은 골목마다 독특한 상호를 가진 점집이 많습니다. 간혹 개성있는 무속인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보광동은 골목마다 독특한 상호를 가진 점집이 많습니다. 간혹 개성있는 무속인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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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에는 유달리 점집들이 많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터가 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명 무속인에게 보광동에 점집이 왜 이리 많냐고 물었습니다. 월궁선녀라는 별호를 가진 이미옥씨(가명.38.여)는 "보광동은 뒤에 남산이 있고, 앞에는 한강이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라면서 "지기와 풍수, 향토의 터줏대감과의 유대를 중시하는 무당들이 선호하는 땅"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이유로는 "손님이 많이 찾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명당이고, 터가 좋아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보광동은 이태원으로 오고가는 유동인구도 많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요. 가구거리, 보쌈거리, 떡볶이거리처럼 '점집거리'로 상권이 형성돼 영업(?)하기가 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보니 달리 간판을 걸지 않고 영업해도 보광동에 오면 특정한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점을 치러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광동에는 점집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어느 동네나 많지만 성당도 있고, 절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슬람성당(모스크)도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점집들임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보광동에는 점집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많고, 절도 있고, 이슬람사원(동그라미 안)도 있습니다. [사진=천지민PD]

보광동에는 점집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많고, 절도 있고, 이슬람사원(동그라미 안)도 있습니다. [사진=천지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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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뉴타운 재개발 앞둬 조만간 현재 모습 사라질듯 = 보광동이란 명칭은 신라 진흥왕 때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까지 진출해 영토를 넓히고 북한산 순수비를 세울 무렵 보광국사가 보광사라는 절을 함께 세운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부군당(府君堂)'이 위, 아래로 나눠 두 곳이나 있습니다. 부군당은 마을의 수령이나 관리 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면서 제를 지내는 곳입니다. 오산학교 옆에 있는 웃당은 김유신 장군을, 보광동주민센터 인근의 아랫당은 '무후묘(武候廟)'라고도 부르는데 중국 촉나라의 재상이었던 제갈공명을 모시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 상인이 한강을 통해 이곳을 거쳐 중국 장안으로 갔는데 이곳을 지날 때 신인(神人) 제갈공명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 장소가 지금의 무후묘입니다. 사당의 중앙에 붓으로 뭔가를 쓰고 있는 제갈공명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홍장군과 청장군이, 왼쪽 벽에는 당할머니와 산신(山神)이 모셔져 있으며, 산신 뒤에는 시중을 드는 동자가 서 있습니다.
수령 600년이 다된 느티나무 아래서 제를 지내는 무속인. 징을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제문(祭文)인지, 축문(祝文)인지 모를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낡은 집들이 빼곡한 골목을 돌고돌아 강변까지 한참 내려간 으슥한 곳에 커다란 나무가 강을 지키고 서 있는 듯 합니다. 이곳에서는 간혹 큰 굿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수령 600년이 다된 느티나무 아래서 제를 지내는 무속인. 징을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제문(祭文)인지, 축문(祝文)인지 모를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낡은 집들이 빼곡한 골목을 돌고돌아 강변까지 한참 내려간 으슥한 곳에 커다란 나무가 강을 지키고 서 있는 듯 합니다. 이곳에서는 간혹 큰 굿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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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모신 촉나라의 명재상이자 동남풍이 불지 않는 곳에서도 동남풍을 불러오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제갈공명의 영혼이 현대의 무당들에게 지혜를 빌려주고 있는 것일까요.

수많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 탁월한 전략과 용맹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민간과 무속신앙에서 장군신으로 널리 추앙되고 있습니다. 김유신을 마을신으로 받드는 대표적인 곳이 보광동인데 이곳 김유신장군당(웃당)에서는 매년 당굿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절과 여러 사당이 많은 것도 풍수지리가 고려됐겠지만 이곳에 점집들이 번성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유신과 제갈공명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질 무렵, 도로 옆 시장 상인들은 인도에 좌판을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떨이!'를 외치는데 어디선가 칭칭 소리가 들립니다. 어디서 굿을 하는 걸까요. 골목을 돌고돌아 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어느 듯 강변입니다.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600년이 다된 느티나무 아래서 누군가 징을 치며 축문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보광동나들목을 통해 한강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보광동 주민들은 간혹 굿 구경(?)도 한다고 합니다.
보광동은 한남뉴타운재개발지역에 포함돼 현재 재개발이 진행중입니다. 주민들은 "재개발 말 나온지가 수십년이다. 언제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결성된 만큼 변신은 가까워졌습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보광동은 한남뉴타운재개발지역에 포함돼 현재 재개발이 진행중입니다. 주민들은 "재개발 말 나온지가 수십년이다. 언제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결성된 만큼 변신은 가까워졌습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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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에서 가장 높은 동네인 우사단길의 옥상 넓은 집에서는 선선한 가을 저녁이면 삼삼오오 모인 동네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한강의 노을을 함께 감상하기도 합니다. 머지않아 이런 모습도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한남뉴타운재개발지역에 포함돼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광동은 전지역이 한남뉴타운 4구역에 포함돼 조만간 외모를 확 바꾸게 되는 것이지요.

보광동 일부 지역의 경우 이태원과 한남동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인데다 한강조망을 누릴 수 있다는 이유로 땅값과 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이슬람성당(모스크)을 중심으로 이곳에 모여사는 가난한 외국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높다란 아파트들에 가려 한강의 노을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보광동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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