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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⑩] 엄천강과 손잡고 걷는 迷路, 그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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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동강리 ~ 용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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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초의 새벽은 향기로 인하여 잠에서 깨어날 만큼 꽃향기는 진하다.
그 진한 밤꽃 향기에 잠에서 깨어났었나 보다.
이는 곧 아카시아 향기로 이어져 세상은 또 한바탕 진동하게 될 것이다.
꽃만 향기를 발한다면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리라.
어느 식물이든지 나름대로의 향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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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마을 어귀에서 아낙네들이 뜯는 쑥에서도 진한 향기가 넘쳐났다.
“쓴 쑥에서 향기라니....”
그럼으로 외모로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들풀조차 형언할 수 없는 향을 가졌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모에 비해 한 점의 향기도 없는 꽃이 있다면
촌스러운 외모에서 향기를 발하는 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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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은 참 의로운 식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변변찮은 소화제가 없었을 때 쑥은 한방에 듣는 묘약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배가 아플 때에
집 앞 묘지 주변에 자라는 쑥을 한 줌 뜯어 오셔서 돌로 찧으셨고
그 진한 국물을 대접에 담아 내게 주셨다.

아! 그 쓰디쓴 쑥물,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리!
그렇지만 잠시 숨을 돌리고 누워 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져 오는 그 생명력…….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또 다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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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峙) 같아 보이지도 않는 구시락재를 지나니 길은 외길 논배미길이다.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다랑이 논에는 태양이 내려와 물을 데우고
물방게라는 놈은 물장구를 치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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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 논은 보물 중에 보물이다.
조선팔도에 있는 다랑이 논들은 모두 보물로 지정해도 과하지 않으리라.
아니 아름다운 다랑이논 자랑대회를 열어도 되지 않을까?

세상모두가 직선으로 통하고 속도가 미덕인 시대에,
마음의 가속도를 제어할 수 없어 보이는 시대에,
가속페달만 있고 브레이크 페달은 없는 기형의 시대에,
속도를 줄이고 앞만 아닌 뒤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 가느다란 허리, 여인들의 옷고름 같고 곱게 땋은 머리 같은 것이 다랑이 논 아닐까?


온갖 잡식으로 온 몸에 배어 있는 독을 해독하고
일등제일주의의 심성에 자극을 가하여
함께 손잡을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도 다랑이 논이다.

동강과 운서, 세동마을을 지나면서 나에게 말 걸어주는 이도
잘록한 허리의 다랑이 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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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다랑이 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근원을 가진 셈이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길이 지리산 둘레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이 아름다운 것은 마을과 함께 호흡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홀로 걸을지언정 결코 홀로 걷지 않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어릴 적 나를 만나 함께 걷는 길이요,
추억의 동무들과 손잡는 길이 그 길이다.
잉태의 장소인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은 본향이다. 나의 경우에는 사유의 근원이다.
우정과 애틋한 사랑이 여기에서 발원했다.

그래서 마을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그 시간은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며 그곳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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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을 꼭 손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고정마을과 송전마을은
그래서 늘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마을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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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마을 감나무할머니집 쉼터는 그 중에서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아니 산속 깊은 곳에서 만난 옹달샘이다.
정돈되지 않고 헝클어진 감나무할머니 댁 쉼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투박한 말투나 외모는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털어 주고 싶어 하시는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를 닮으셨다.

논배미를 꼭 닮으신 할머니,
그 잘록한 논두렁, 밭이랑을 닮으신 할머니…….
그 모습에서 이미 나는 치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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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좁은 미로를 걸어야 한다.
엄천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걸어가는 숲길이다.
오른쪽 손은 엄천강과 손잡았다.
숲이 만든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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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초의 숲길은 온갖 새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곳이다.
거기에다 수정 같은 엄천강물,
바위와 부딪쳐 터져나는 사운드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엄천강의 포말은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닮았다.
미로여서 더 아름다운 것일까?
아마 넓디넓은 숲길이었다면 이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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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쳐 오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좁디좁은 숲속 미로,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숲속 사람들이 정겹게 보인다.
혼자가 아닌 엄천강과 손잡았기 때문이리라!

숲길은 나와 손잡는 길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손잡는 길이다.
숲길은 너와 손잡는 길이기도 하다.
나를 내 세우지 않고 너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만남이다.


숲길, 나 너와 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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