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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거기 앉으라…위로가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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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세월 횡성 풍수원성당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풍수원성당안은 의자가 아닌 마루로 되어 있다. 한 예배객이 손때가 묻은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묵상을 하고 있다.

풍수원성당안은 의자가 아닌 마루로 되어 있다. 한 예배객이 손때가 묻은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묵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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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어둠과 적요함이 밀려온다. 100여년의 세월을 품은 반들반들한 마루에 따뜻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눈을 감는다. 탁세에 물든 마음과 사념에 눈꺼플이 파르르 떨려온다. 뒤 돌아보고 숨 고르고, 일상에 복잡하게 찍힌 발자국을 내려놓는다. 고개를 숙인다. 그것으로 족하다.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지치고, 힘들고, 의미없는 하루가 반복되는 그런 느낌…. 가슴 한 켠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그런 날 말이다.
피정(避靜).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세상의 번잡함을 떠나 고요하게 마음을 지킨다'는 뜻이다. 가톨릭에서 일상생활에 잠깐 벗어나 묵상과 침묵 기도를 하는 수련을 말한다. 사찰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하다. 몸의 즐거움보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그런 휴식인 것이다. 사실 도회지의 지친 삶 속에서 위로 받아야 할 것은 몸보다는 마음이다. 꼭 피정이 아니라더라도 성당에 앉아 자신을 위로하고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는것도 유의미한 일일게다.

강원도 횡성에 가면 100년 세월에도 단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는 풍수원성당이 있다.
100년 세월에도 단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는 풍수원성당

100년 세월에도 단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는 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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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라면 한번쯤 피정을 꿈꾸는 곳이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풍수원성당을 보면 절로 차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6번 국도를 따라 횡성땅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유현리이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마을을 지나자 한 눈에도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성당이 나왔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빨간 벽돌 성당은 동화 속 그림같다.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섰다. 고딕양식으로 외관은 서양의 것을 따왔지만 안은 의자가 없는 마루바닥이다.
성당 안에 가득한 것은 편안한 어둠과 적요함, 누군가 금방 기도를 하고 돌아갔는지 마루에는 방석 몇 개가 놓여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독서대에는 펼쳐진 '예레미야서'가 환하게 빛을 내고 있다.

종교나 개인적인 신앙심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오래 된 성당에 들면 마음이 가지런하게 정돈되는 느낌이다. 깊은 산중의 오래 묵은 절집에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손때에 반질반질한 마루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사방으로 가지 치는 사념에 묵상은 애시당초 무리였을까. 탁세에 물든 검은 마음에 '피세정념'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좀체 가라앉지 않는 생각의 꼬투리와 한참을 씨름하다 밖으로 나왔다.

풍수원성당의 역사는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러 100년 된 천주교 성지는 봤어도 200년을 훌쩍 넘는 성지를 대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1801년 순조 1년에 천주교를 박해한 '신유사옥'때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은 신자들은 성당 건물도 없이 신앙을 지키며 생활했다. 60여년이 지난 1866년 병인년에 대박해가 시작되고 1871년 '신미양요'가 잇따라 일어났다. 더 많은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이곳에 숨어들었다.
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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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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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을 일구며 연명했던 천주교 신자들이 기와를 굽고 벽돌을 날라 1907년에 지금의 성당을 지었다. 서울 약현성당(1892년), 전북 고산성당(1896년), 서울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한국에서 네번째로 지은 성당이다. 하지만 한국인 신부가 지은 것으로는 최초의 성당이다. 성당이 세워진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당 뒤에는 '묵주동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이 있다. 피정의 목적이 기도와 묵상이고 성당이 기도의 공간이라면 이 길은 묵상을 위한 것이다. 숲길을 따라 판화가 김철수가 새긴 예수 고난을 담은 연작 14개가 돌비석에 새겨져 있다.

묵주동산에선 되도록 걸음을 늦춰야 한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끼며 걷는다. 그 길의 끝에는 소나무가 둘러친 잔디밭 가운데 성모상과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돌 제단 앞에 서서 십자가를 올려다보면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절로 경건해진다.
박해시대에 흙으로 빚은 십자가(왼쪽)와 율무로 만든 묵주

박해시대에 흙으로 빚은 십자가(왼쪽)와 율무로 만든 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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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의 사제관도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1912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로 등록문화재 163호다. 지금은 사제들과 신도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다. 박해시대에 흙으로 빚은 십자가, 율무를 깎아 만든 묵주, 촛대, 박해일기, 묵상서, 기도문 등이다. 물건이 귀했기 때문에 유일한 것들이기도 했다.

사제관을 나와 다시 성당으로 들었다. 어둠이 깃든 침묵속 성당안은 좀 전의 모습과 다름 없다. 마루에 앉아 눈을 감았다. 또 다시 밀려오는 사념을 떨쳐버리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의 인생도 존중하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라", "조용히 전진하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10계명이 떠오른다. 그걸로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그래 마음을 열고 천천히….

횡성=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
횡성을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원주나 새말나들목을 이용한다. 하지만 풍수원성당은 서울에서 덕소를 지나 6번국도 양평으로 가는게 헐씬 더 가깝다. 양평을 지나 횡성방향으로 가다 횡성 땅으로 들어서자마자 왼편으로 성당가는길이 나온다. 문의 033-343-4597033-342-0035)

△먹거리=한우를 빼놓을 수 없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축협한우프라자다. 횡성읍 본점(사진·033-343-9908)과 새말점, 둔내점 등이 있다. 우가(033-342-7661)도 유명하다. 우가는 특수부위나 육회 등은 예약판매를 한다. 도축한 고기를 숙성해 내놓는데 최소 1주일 전에 예약을 하면 가장 숙성이 잘된 고기를 맛볼 수 있다. 횡성종합운동장앞에 있는 운동장해장국(033-345-1770)은 얼큰한 한우해장국과 내장탕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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