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논란을 초래한 정권의 교체를 염원하는 촛불집회에서는 연일 헌법 제1조가 거론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은 노래로도 불리우며 헌법을 다시 배우는 현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같은 왕정국가에서조차 백성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진리처럼 여겼을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항목이 불가침 영역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여야간 입씨름 현장에서는 국민의 뜻이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내정한 장관을 임명하라는 여당과, 임명을 철회하라는 야당은 모두 국민의 뜻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립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등 고등학교를 평준화하겠다는 결정과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 사이에서도 국민의 뜻은 걸쳐 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도, 통신비 인하 대책도,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찬반 입장이 팽팽하다. 엇갈리는 주장은 국민적 요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온다.
그렇다면 실제로 양측의 주장에 모두 국민의 뜻이 담겨있는 것일까. 실은 그렇게 볼 수 있다. 100% 동의받은 민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수는 5000만을 넘으며 그중 적은 수의 국민이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민의의 일부임과 동시에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 민의를 구성하는 주체들이 설령 특정 사안에 대해 왜곡되거나 편협한 근거로 판단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소모적 논쟁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민의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을 경우 최종 선택을 통해 논란을 잠재우는 몫은 지도자다. 민의를 따르되 넓고 멀리 보며 결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 민의를 따르는 과정은 좀더 과학적이고 세련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반드시 옳은 방향이라고 100% 장담할 수 없기에 그것만을 근거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이는 결단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의를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최근 만난 원로의 말씀은 이렇다. "어떤 정책이라도 정확한 사실과 근거를 알고 있으며, 거기서 파생되는 것은 무엇이고, 또다른 부분과의 역학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이들이 참여해 결정해야 한다." 엄마의 옷으로 변장한 늑대가 오누이를 해치지 않도록 할 일이다.
소민호 기자 sm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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