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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성장史]⑧동아백화점 '숍걸' 인기 제압한 박흥식의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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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하가 쓰는 재계 通史
-상품권 발매...상권초토화
-혼마치 상가와 숙명적 대결

'풍요와 소비의 판타지, 상점의 왕'이라는 백화점을 가져야겠다는 박흥식의 꿈은 집요했다. 또 그 전술로 복숭아 두 개로 세 장수를 제거한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곧 문제를 해결하려거든 힘을 쓰기보다는 머리를 굴리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경쟁자를 분석해 들어가면 갈수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적이었다. 최남의 동아백화점을 연일 주시하고 있었으나 일절 틈새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한데 박흥식의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었다. 최남의 동아백화점이 개점 첫날부터 미모의 젊은 여점원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해서 매장마다 배치한 것이었다.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당시 '숍걸'이라고 불렸던 젊은 여점원들을 동원한 일종의 미인계였다.
이것은 분명 종로 상계에선 일찍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당시로선 난생 처음 보는 강력한 상술인 데다 고객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박흥식의 참모들은 최남의 동아백화점을 바라보면서 그만 아연실색했다. 마치 허를 찔리고 만 듯 벌레 씹은 얼굴로 박흥식만을 속절없이 돌아보았다.

"너무 걱정 마세요. 찾아보면 반드시 길이 보일 테니까."
사실 그는 최남의 미인계를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모처럼 활짝 웃었다. 좀처럼 허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만 같던 경쟁자에게서 비로소 그 틈새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사장님께선 속 편한 말씀만 하시는군요. 동아백화점의 숍걸들 때문에 우리 손님들마저 다 떨어져 나갈 지경인데요."
하긴 참모들의 걱정이 공연한 기우만도 아니었다. 동아백화점 숍걸의 인기가 지금으로 치자면 연예인 못지않은 대단한 화젯거리인 데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동아백화점 전체 점원 가운데 절반이나 된다는 100여명이 우글거리는 판이었으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동아백화점에서는 벌써부터 '로-만스(로맨스)'까지 피어난다는 야릇한 소문마저 나돌 지경이었다.

'K라는 청년이 잇섯다. 동경 가서 K대에를 맞추고 나왓다. 그러나 여성이 그리운 년령에 달해엣건만 배필을 구할 길이라고 업섯다. 혹 녀학교의 선생이나 아는 이가 잇스면 그 길수를 알 수도 잇겟지만 이성을 만날 긔회라고 업서 번민하엿다. 그러다가 하로는 ○백화점에 갓다. 3층 문방구 파는데 올라가니 그의 눈압헤 나이딩겔가치 청초하게 생긴 엇든 어엽분 녀성이 점 원옷을 입고 손님을 맛고 잇섯다. K는 그 순간 크다란 충동과 흥분을 늣겻다. 그래서 별로 필요도 업는 만연필과 공책을 사고 도라왓다. 쓸쓸한 하숙에 오니 악가 그 얌전한 녀성의 모양이 이처지지 안는다.
…<중략>….
나는 K가 그때 점원감독의 눈을 슬슬 피하면서 그 점원(지금은 자긔 안해)에게 러브레타를 비밀히 주든 이약이를 K로부터 드럿지만, 그러고 그 편지도 내 손에 두 석장 드러와 잇지만 본인의 명예를 위하여 여기에 공개하기를 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흥식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동아백화점 숍걸의 미인계가 지금은 상당한 효과를 거둘지도 모르나 그런 불안정한 상술은 이내 부메랑이 돼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 전략조차 세우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아백화점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숨은 전술로 그는 정공법을 택하고 나섰다. 머지않아 싫증나고야 말 미인계보다는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다시 말해 상품의 가격 경쟁에서 라이벌 관계인 동아백화점과 확실한 차별성을 강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수년 전 종이 파동 때의 경험을 되살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 최남의 동아백화점은 물론이고 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인들을 억누르기 위해 구축해 놓은 일수판매 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선 오사카에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빌딩을 임대했다. 그런 다음 일본 현지에서 각종 상품을 제조회사들로부터 직접 공장도 가격으로, 거기에 다시 현금으로 몽땅 할인해 구매한 뒤 경성으로 직수입해 들여왔다. 그렇게 저렴하게 들여온 상품들로 대대적인 사은 대매출의 할인 판매를 펼쳤다.

이쯤 되자 가격 경쟁에서 누구도 당해내지를 못했다. 종로 거리는 물론이고 혼마치의 일본 백화점들마저 발칵 뒤집히고 만 것이다.

그러나 박흥식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현금 교환이 가능한 상품권까지 발매하면서 일찌감치 상권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참으로 신출귀몰한 상술이었다. 특히나 종로 상계에서 맨 처음으로 시도된 상품권 발매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였다. 당시 공공연히 성행하던 뒷거래, 예컨대 '와이로(뇌물)'를 주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는 현금 교환이 가능한 상품권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수단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에 화신상회 바로 옆 건물인 최남의 동아백화점은 비틀거렸다. 개점 초기 화려한 미인계로 기세등등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숍걸로 장안의 한량들을 모조리 불러모으는 데까지는 기가 막히게 적중했으나 그렇다고 곧바로 매출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백화점을 찾은 사내들이 숍걸의 손이나 슬쩍 만져보려고 오는 터에 실속이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동아백화점의 최남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여점원을 선발하는 임원이 여점원 여럿을 농락했다가 그만 신문에 기사가 터지고 마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 것이다.

결국 엎친 데 덮친다고 두 번의 결정타를 허용한 동아백화점은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일찍이 박흥식이 의도한 그대로였다.

이미 승부가 판가름 났다고 생각한 박흥식은 그제야 비로소 최남을 찾아갔다. 최남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던지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화신상회의 박흥식에게 동아백화점을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1932년 여름, 이때 박흥식의 나이 불과 29세였다.

최남을 따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박흥식에게 경쟁자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당시 북촌의 종로 상가와 남촌의 혼마치 상가는 본질적으로 양분돼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숙명적 경쟁 관계였다. 또 그런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은 두 지역의 대표적인 상점, 곧 북촌의 화신백화점과 남촌의 미쓰코시·조지야 ·미나카이·히라타 등의 4대 백화점이었다.

4대 1이라는 수적 열세도 그렇지만 자본력에 있어서도 혼마치의 일본 백화점들은 종로의 화신백화점을 크게 앞질렀다. 1935년 당시 화신백화점의 자본금이 100만원(지금 돈 약 1200억원) 정도인 데 반해 도쿄에 본점을 둔 미쓰코시가 3000만원(지금 돈 약 3조6000억원)으로 무려 서른 배에 달했다. 나머지 조지야·히라타·미나카이백화점 역시 화신백화점보다 훨씬 더 많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다면 혼마치의 이런 4대 백화점과 숙명적으로 경쟁하고 있던 화신백화점의 대응 전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 시기 박흥식은 신문 광고에 '약진하는 화신백화점' 운운하면서 곧잘 민족 감정에 호소했다. 백화점을 확장하거나 경영 위기에 처할 적에도 '민족백화점'인 화신을 살려줘야만 한다고 읍소했다. 또 1938년 봄에는 왕족을 초대해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을 병보석으로 석방시키는 데 일조한 것 모두가 실은 그와 무관치 않다는 의혹이 줄곧 따라다녔다.

어쨌거나 상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며 새롭게 태어난 화신백화점은 새 단장을 하고 문을 연 개점 초기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동아백화점과의 무혈 통합으로 일단은 성공적인 출범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박흥식에게 예기치 않은 불운이 찾아들었다. 백화점 북쪽의 한쪽 구석에 움막을 지어놓고 과일 노점상을 하던 박태섭이라는 이가 촛불을 켜놓은 채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촛불이 넘어지면서 옮겨 붙는 바람에 그만 화신백화점에 불길이 휩싸이고 만 것이다. 1937년 1월 27일 밤이었다.

이날은 음력 12월 23일로 설날 명절을 며칠 앞둔 일요일이라서 백화점 고객이 어느 때보다 많았고, 백화점에 쌓아둔 상품 또한 엄청났다. 그 모든 것이 화마에 휩싸여 몽땅 잿더미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박흥식은 이제 망하게 되었다는 풍문이 장안에 돌았다. 자신의 잘못 때문은 아니라지만 지난 9년여 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하룻저녁에 잿더미로 스러지고 만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혼마치의 일본 백화점들이 바라는 대로 결코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박흥식은 총독과 마주앉았다. 화신백화점의 불길을 조기에 잡지 못한 점을 부족한 소방차 탓으로 돌렸다. 경성의 인구가 40만 명인데 소방차가 고작 30대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라며 화신백화점의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종로경찰서 구관을 빌려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 말문이 막힌 총독은 결국 며칠 뒤에 박흥식의 청을 들어주었다. 언론이 일제히 들고일어났으나 총독부가 재빨리 수습을 하고 나섰다.
일제시대 화신백화점

일제시대 화신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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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37년 가을. 화재 보험금과 자산을 털어 지어올린 연건평 3011평에 지하 1층, 지상 6층 높이의 화신백화점 건물이 그 위용을 화려하게 드러냈다. 당시 이 건축물은 혼마치의 미쓰코시·조지야·히라타·미나카이백화점보다도 더 크고 높은 경성 최대의 백화점을 자랑했다.

지하 1층-식료품점, 실연장, 사기그릇품점
1층-양품점, 화장품점, 여행안내점
2층-신사양품점, 침구점, 주단포목점, 미술품점, 시계점, 귀금속점, 안경점, 견본실
3층-부인자공복점, 완구점, 수공품점, 조화점
4층-서적점, 운동구점, 문서구점, 신사양복점, 점원 휴게소
5층-대형 식당, 조선물산점, 모기매장, 사진기 재료점
6층-그랜드 홀, 스포츠랜드, 전기점, 가구점, 모델 룸
7층-옥상, 상설화랑, 사진점, 미용실, 원경용품점

더구나 그간 혼마치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근대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화신백화점은 '올라갈 때는 공중에 붕 떠오르는 것 같고, 내려올 때는 공중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것 같아서 누구든지 어지러워했다'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시설까지 갖춰 장안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뿐 아니라 7층에는 드넓은 옥상이 설치돼 있었다. 거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나면서도 신기했다. 당시엔 '까마득하게 높다'고들 저마다 입을 모았었다.

6층 꼭대기에 반짝이는 '네온사인'이라는 것 또한 참 신통했다. 저녁이면 촘촘히 꽂힌 전구에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꺼졌다 점멸하며 글자가 나타나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방직후 화신백화점

해방직후 화신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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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45년 일본의 패망은 세상을 온통 뒤바꿔 놓았다. 마침내 식민지배의 사슬을 끊고 감격스러운 8·15 해방을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빼앗긴 고토를 되찾은 종로의 상계에서도 그 같은 해방의 기쁨에 마냥 가슴 벅차오르기만 했던 것일까. 아니 다른 부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한때 조선 상계의 메카라는 종로 거리의 총아였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전환기의 역사 속에서 그는 과연 어떤 운명 앞에 서 있게 됐던 것일까.

해방 이후 박흥식은 친일 행각으로 말미암아 '반민특위'의 제1호 체포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와 함께 화신그룹 또한 급속히 해체됐다.

이후 반민특위에서 풀려나 화신그룹의 재기에 안간힘을 다했으나 시대의 흐름마저 끝내 그를 등졌다. 1979년에는 계열사에 연쇄 부도가 일어나 창업 50년여 만에 화신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그가 40여년 가까이 살아온 종로의 가회동 일식 양옥을 30억원에 처분한 채 삼성동의 40평짜리 주택으로 옮겨 전세로 살다가 5년 뒤 9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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