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이 구글에 완전히 '뒷통수'를 맞았다. 구글이 지난 2007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선보인 이래로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다던 기존의 입장을 번복해 4년만에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전격 인수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드로이드폰 업체 1위인 삼성전자는 구글의 선전 포고로 애플에 이어 구글과도 경쟁을 벌여야 하는 가시밭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구글, 모토로라 인수로 삼성전자 뒷통수=구글은 15일(미국 현지시간)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125억달러(13조5125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OS가 세(勢)를 늘리면서 휴대폰 제조 사업에까지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구글이 처음 안드로이드 OS를 내놨을 때부터 제조사들은 구글이 향후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 것을 우려했다. OS와 단말기를 모두 자체 제작한 애플처럼 구글도 장기적으로는 '구글판 아이폰'을 만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구글은 제조업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제조사들을 안심시켰다.
제조사들이 구글에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글이 '넥서스원', '넥서스S' 등 레퍼런스폰을 만들면서 슬금슬금 휴대폰 제조까지 넘보기 시작하면서 구글의 제조업 진출은 사실상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제조사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목적은 '구글판 아이폰' 생산=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배경에는 애플 모델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자체 OS를 바탕으로 단말기까지 제작하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 2분기에만 2034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해 매출 285억7000만달러, 순익 73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매출과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100% 증가했다.
휴대폰 제조 업체인 모토로라 인수로 단말 제조 경쟁력에 안드로이드라는 자체 플랫폼을 얹어 애플과 같은 스마트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구글의 계산인 셈이다.
구글은 일단 모토로라를 독립된 회사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제조사 달래기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조사와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도 결국은 구글과 경쟁 구도로 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허권 확보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애플과 특허 전쟁을 벌이는 구글로서는 1만7000건의 통신 특허를 보유한 모토로라의 인수 가치가 충분하다. 비록 실패했지만 구글이 지난달 노텔의 특허 6000개를 9억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던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삼성전자, 향후 행보는?=국내 휴대폰 제조 업체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안드로이드폰 1위로서 안드로이드 OS를 바탕으로 애플과 가장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따라 구글이 짠 새로운 판이 어떻게 펼쳐질 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모바일을 탑재한 윈도폰 점유율을 얼마나 늘리고 안드로이드 OS 의존도를 얼마나 줄여나갈 지가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해외에서 윈도폰을 출시했고 이르면 연내 국내에서도 윈도폰을 출시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윈도폰 점유율은 올해 5.5%에서 2015년 20.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미래가 밝은 상황이다.
MS의 노키아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향후 MS와도 경쟁 구도로 접어들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폰과 윈도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OS인 바다 개발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OS 자원 확보 차원에서 꾸준히 바다폰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오는 9월 독일에서 열리는 가전 전시회 이파(IFA)에서도 새로운 바다폰을 공개할 예정이다.
휴대폰 제조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면서 하드웨어 경쟁력만 갖춰서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며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제 OS 경쟁력 확보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밝혔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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