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지주사 전환…마지막까지 R&D 투자에 집중
◆"외국에서도 통하는 기업 브랜드가 필요하다"=구 회장이 취임하기 한달전인 1995년 1월 3일 서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 단상에 오른 구자경 명예회장은 "격변의 시대를 맞아 부담을 무릅쓰고 내린 중대한 결단입니다"라며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럭키는 LG화학, 금성사는 LG전자, 럭키금성상사는 LG상사로 바뀌었다. 1947년 구인회 창업주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1983년 '럭키금성'으로 그룹 명칭을 변경한 뒤 줄곧 유지해 오던 명칭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같은 결정은 한달 뒤 회장직을 넘겨 받은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주도했다. 내수 시장에서 이미 자리잡은 '럭키', '금성'이라는 이름을 무엇하러 버리냐는 주요 경영진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구 회장은 이들과 명예회장에게 "외국에서도 통하는 기업 브랜드가 필요합니다"라며 끊임없이 설득했다. 이미 당시부터 구 회장은 세계 시장 공략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렇게 남긴 것이 LG LCD(현 LG디스플레이)였다. 백방으로 투자처를 찾던 LG에 반가운 손님이 들었다. 필립스가 16억달러(당시 한화 1조9200억원)를 투자할테니 합작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구 회장은 LG LCD의 지분 50%를 필립스에게 넘겨주며 합작사 LG필립스LCD를 설립했다. 필립스가 투자한 총 16조원 중 1조1799억원은 LG전자로 투입돼 든든한 구원투수 역할을 했고 나머지 7250억원은 신주 유상증자 형태로 LG필립스LCD가 3세대 LCD 공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냈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사전환 = 외환위기를 거치며 구 회장은 오너의 역할과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역할에 대해 장고에 빠졌다. 수년간의 고민 뒤 2003년 3월 LG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적은 자본으로도 소위 문어발식 확장을 할 수 있었던 순환, 상호출자의 고리를 이제는 끊는 것은 물론 지분 출자를 이유로 사업적으로 무관한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LG 특유의 책임경영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구 회장은 CEO들에게 "자회사는 사업에만 전념하고 지주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선진 지배구조 시스템에는 CEO들의 책임경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지주사 전환 이후에는 친인척, 동업자간 계열 분리도 주도했다. 구 회장은 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오너들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친인척들을 설득했다. 사업에 이견이 있다면 양보하겠다는 구 회장의 뜻을 받아들여 LIG, LS그룹이 떨어져 나갔다. 2005년 1월에는 사돈 집안인 허씨 가문과도 결별해 GS그룹이 분리됐다.
◆마지막까지도 미래(R&D)에 투자 =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만든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는 구 회장이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다. 2014년 기공식에 참석한 구 회장은 "LG사이언스 파크는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가 될 것"이라며 "수만명의 다양한 인재들을 유치, 육성하고 기술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촉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입주를 앞둔 지난해 9월에는 수술 이후 다소 건강이 회복되자 마자 'LG사이언스파크'로 향했다. 연구소는 물론 임직원들의 편의 공간까지 꼼꼼히 둘러본 구 회장은 "즐겁게 일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R&D 혁신도 이뤄진다"면서 "인재들이 창의적으로 연구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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