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업계에도 전설 같은 갑이 존재한다. 이동통신 업계를 크게 보면 이통사와 제조사로 나뉜다. 혹자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의 절반 가량을 잠식한 SK텔레콤 과 세계 스마트폰 판매 1위 삼성전자 중 누가 갑일지 고민 중일지도 모르겠다. KT 와 LG유플러스 와 같은 이통사와 LG전자와 같은 제조사들은 이들의 시장 지배력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통사와 제조사는 스마트폰 판매량에 따라 오묘한 역학 관계를 조성한다. 폰이 팔리지 않으면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통사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반면 폰의 판매량이 좋으면 수급을 결정짓는 제조사의 역할이 커진다. 소비자의 소비 성향에 따라 갑과 을이 변화한다는 게 두 업체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에서 애플을 건드릴 수 있는 곳은 없다. 먼저 우리나라는 2~3차 아이폰 출시국으로 분류돼 있다. 올 가을 출시할 아이폰8도 미국에 출시한 뒤 한 달여가 지나서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이폰6와 아이폰6S는 물론, 가장 최근 제품인 아이폰SE 출시 때도 우리나라는 3차 출시국으로 분류됐다. 국내 규정상 전파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가 늦어서 혹은 우리나라 시장이 작아서 등 애플 밖에서 추측하는 이유는 갖가지다. 하지만 애플의 공식 해명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애플 스토어도 없다. 지난 10년간 애플스토어는 중국, 일본, 대만 등 곳곳에 퍼졌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플은 총 19개국에 492개의 애플스토어를 설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가 되서야 서울 가로수 길에 한 곳이 개장할 예정이다.
10년간 이통업계가 표면에 털어놓지 못하는 불만은 아이폰과 관련한 TV광고 등 마케팅을 이통사가 전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 출시 일주일을 앞둔 상황에서야 국내 이통사에게 아이폰의 특징 등 광고 포인트를 알려줄 정도라며 혀를 차는 이통사도 있다. 애플은 거의 모든 계약 조건을 비밀로 하고 있어 이통사들은 관련한 건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한다.
단순하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아이폰의 공시지원금 차이에서도 애플의 시장 지배력은 찾아볼 수 있다. 이통사와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에 지급하는 공시지원금과 이통사의 재원만으로 구성된 아이폰의 공시지원금은 10~2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
아이폰 출시 10년간 애플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인식은 변한 게 없다. 상황이 이와 같지만 정부는 최근 분리 공시제 시행을 가계 통신비 인하책 중 하나로 내놓으면서 아이폰 판매에 기름을 붓고 있다. 분리공시제는 이통사와 제조사의 지원금 내역을 분리해 공시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아이폰 지원책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삼성전자가 분리공시제 시행에 따라 지원금 지원을 중단할 경우 애플과의 가격 차이가 나지 않아 아이폰 판매가 신장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분리공시제 시행에 따라 제조사가 스마트폰 출고가를 인하하는 게 아니라, 애플처럼 지원금을 아예 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이폰 가격을 갤럭시나 G시리즈에 맞춰도 모자를 판에 갤럭시나 G시리즈의 가격을 아이폰에 맞추는 형국이다.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통사나 국내 제조사 뿐만이 아니다.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해 폭리의 최상층부가 어디인지 들여다 봐야 할 시점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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