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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티워드]고등어로 '자르르' 기름칠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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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음식의 언어를 찾아서…⑨고등어

고등어 구이(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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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고등어'라고 하면 노릇노릇 잘 구워 접시에 올렸을 때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모습이 떠오른다. 산울림의 노래에서,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을 때 한 귀퉁이에 있는 소금에 절여져 있는 고등어를 보고 연상한 것도 아마 어머니가 아침에 구워주는 기름진 고등어의 자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어를 먹으면 입술에 번지르르하게 기름이 묻고 목구멍에 기름칠 좀 했다는 느낌도 든다. 고등어와 기름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인데 이름을 둘러싼 얘기들을 파헤쳐보면 더욱 그렇다.

기름칠은 뇌물 주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기계 등에서 기름칠을 하면 보다 매끄럽게 작동하는 데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고등어도 과거 뇌물로 줬던 생선이었다고 한다. 기름진 고등어를 기름칠에 썼다는 얘기다. 사연은 이렇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관청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고등어 두 마리를 들고 갔다고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고등어를 가져가면 일이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이런 관습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서민들이 뭔가를 부탁하고 싶을 때 고등어를 뇌물로 건넸다는 의견이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사바사바'다. 고등어를 일본어로 '사바'라고 하니 '사바사바'면 고등어 두 마리다. 사바사바는 뒷거래를 통해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바로 고등어 두 마리를 뇌물로 주는 데서 비롯된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고등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게 된 것일까. 고등어는 한자로는 언덕 고(皐) 혹은 높을 고(高)와 오를 등(登)을 쓴다. 이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고등어의 생김새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통통하게 오른 살 덕분에 고등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옛날 칼 모양과 비슷해 고도어(古刀漁)'라고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고도어가 변해 고등어가 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고등어를 '벽문어(碧紋漁)'라고 썼는데 이는 푸른 무늬가 있는 생선이라는 뜻이다.

고등어의 재밌는 별칭은 하나 더 있다. 고등어의 새끼를 '고도리'라고 한다. 고스톱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지만 고도리는 엄연히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다. 고등어의 이름에 얽힌 이런 다양한 얘기들은 고등어가 우리나라 서민들이 좋아하는 생선이었다는 점을 잘 알려준다. 고등어가 가지고 있는 정서에는 서민의 애환이 스며 있는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이렇게 썼다. "장에 갔던 가장이 어스름한 달밤에 막걸리 한잔으로 거나해져서 타령 한 소리 읊조리며 영을 넘어올제 새끼에 꿰어 들고 오던 것이 간고등어 한 손이다. 산지가 많은 영남 사람들은 지금도 평야 지방의 그들먹한 한정식보다도 경상도 막장으로 끓인 찌개와 구운 간고등어 한 토막을 더 쳐줄 정도가 아닌가."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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