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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역사, 이 손 안에 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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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원 KBO 기록위원장 인터뷰
"正史 다루는 史官 심정으로 냉정하게 기록"
"연장 18회 경기, 이승엽 56호 홈런 등 기억에 남아"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문학=김현민 기자]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문학=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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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야구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두 평 남짓한 공간. 가지런히 정리된 노트북과 망원경에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집까지. 지난 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기록원실에서 만난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52)의 일터 풍경이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KBO 기록위원은 모두 열일곱 명. 매일 다섯 구장에서 하는 1군 경기에 2인1조로 열 명이 투입되고, 퓨처스리그(2군)에도 경기당 한 명씩 모두 여섯 명이 활동한다. 김 위원장도 현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3분의 1 이상 경기장을 지킨다. 이들이 수기(手記)와 전산으로 입력하는 기록들이 프로야구의 역사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기록한 홈런이나 안타, 실책 등을 토대로 다양한 자료가 만들어지고, 이를 가공해 분석과 통계가 완성된다. 선수들의 연봉을 산정하는 근거도 우리 손에 달렸다. 자부심이 큰 만큼 책임과 부담감도 막중하다. '정사(正史)'를 다루는 '사관(史官)'의 심정으로 냉정하고 꼼꼼하게 일한다"고 했다.

스트라이크와 볼, 아웃이나 세이프, 페어와 파울 등은 심판의 몫이지만 안타와 실책을 판가름하는 일은 기록위원이 한다. 애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려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도 규정집을 근거로 정한다. 김 위원장은 "안타는 좋고 실책은 나쁘다는 인식이 강해 기록에 따라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그래도 '저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라는 주관적인 판단은 기록원에게 가장 위험하다. 중립에서 규정을 재확인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문학=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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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위원들은 보통 경기 두 시간 전 배당된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식사를 하고 선수들의 타격과 수비 훈련을 유심히 지켜본다. 김 위원장은 "기록실과 그라운드가 떨어져 있어 경기 도중 중요한 장면을 놓칠 수도 있다. 훈련 때 타구 방향이나 비거리, 수비 동작 등을 눈여겨보면 실제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개시(開始) 한 시간 전 양 팀이 제출한 출전 선수 명단을 확인하면 준비가 끝난다. 경기 기록은 2인이 역할을 나눠 한 명은 수기, 한 명은 전산으로 입력한 뒤 이를 검토한다. 김 위원장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동료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은 '23시'. 평일 오후 6시30분에 시작한 경기가 오후 11시가 되어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동료들이)자신과는 "한 조로 일하기를 꺼린다"며 웃었다.
그는 숱한 대기록을 현장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KBO리그에 대표하는 굵직한 역사를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2008년 9월3일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한화가 대결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장 18회 경기(1-0 두산 승)도 기록을 맡았다. 김 위원장이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선수는 이승엽(41·삼성). 2003년 10월2일 대구구장에서 롯데 이정민(38)을 상대로 세운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56호)도 정확히 되짚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승엽은 김 위원장을 인터뷰한 이날 SK와의 원정경기(7-8 패)에서 통산 최다 2루타(459개) 기록을 추가했다.

김 위원장은 "(이승엽이)우리 프로야구에 워낙 큰 발자취를 남겼고 여러 모로 모범이 되는 선수다. 내 손으로 작성한 기록도 많다. 선수생활을 마감한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기록위원회 차원에서도 은퇴를 기념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문학=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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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1991년 기록위원 공개채용 2기로 KBO에 입사했다. "운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보통 한두 명을 선발하는 관문인데, 그해 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리그에 합류하면서 일손이 늘어 세 명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앙 중·고등학교에서 야구 선수를 하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운동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래도 야구계에서 일할 기회를 꿈꿨다. 대학교 4학년 때 대한야구협회 기록원으로 참여한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지도자와 선수뿐 아니라 팬들도 갈수록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점을 뿌듯해했다. 사회인 야구가 활성화되면서 이곳에 필요한 기록원을 양성하기 위해 2011년 시작한 KBO 기록강습회는 수강 정원 350명을 모집 1~2시간 만에 채울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기록위원회에서는 60명 정원의 전문 기록원 강습을 비롯해 지방 순회 교육도 꾸준히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기록 강습을 하면서 건전하고 열성적인 야구팬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구계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자주 생긴다. 외형적인 성장에만 몰입하면서 간과했던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가 제 1의 스포츠를 자부하지만 팬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더 깨끗하고 모범적인 스포츠로 거듭나도록 구성원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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