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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JP 10선 꿈 좌절시킨 촌철살인 ‘언어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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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국회의원 10선 실현 vs 진보정치 상징 노회찬 원내 입성…2004년 4월15일, 한국정치 역사가 바뀐 그날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JP 10선 꿈 좌절시킨 촌철살인 ‘언어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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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치 역사가 바뀐다.” 2004년 4월15일 오후 17대 총선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 모인 이들은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는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 입성을 99% 확신하게 하는 결과였다. 정치부 기자들도 민주노동당사에 대거 집결해 ‘역사의 순간’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각, 자민련 당사는 충격의 늪에 빠졌다. 방송사 출구조사는 선거 참패를 예고했다. 심지어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비례대표 1번은 김종필(JP) 총재. 김 총재는 한국 정치역사상 최초의 ‘10선 국회의원’ 탄생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당 득표율 3%를 넘으면 최소한 1석의 비례대표가 배분된다. 자민련 비례대표 1번은 정당 득표율 3%만 넘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리라는 얘기다. 자민련의 지지기반이나 김 총재의 정치적인 위상을 고려할 때 ‘당연히’ 10선 국회의원 자리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7대 총선 개표 결과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개표 초반만 해도 자민련의 정당 득표율은 3% 이상이었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3% 기준선이 위태로웠다. 자민련이 초조한 표정으로 정당 득표율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민주노동당도 떨리는 마음으로 개표 결과를 지켜봤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추모문화제가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밖에서 영상을 통해 추도식을 함께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추모문화제가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밖에서 영상을 통해 추도식을 함께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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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이 3% 벽을 넘지 못할 경우 남은 하나의 비례대표 의석은 민주노동당의 차지였다. 민주노동당은 비례대표 기호 7번까지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은 뒤 8번의 당선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호 1번 심상정, 기호 2번 단병호 등 앞선 기호를 받은 이들은 여유가 있었지만 기호 8번은 원내 입성이냐, 원외 정치인으로 머무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기호 8번의 주인공은 노회찬. 정치인 노회찬은 사실상 진보정치의 역사다. 진보진영에서 정당 정치 활동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때도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다. 그의 당선은 민주노동당에 한 석이 추가되느냐의 의미를 넘어서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진보정치의 상징인 노회찬의 원내 입성이냐, 한국 정치에서 전무후무한 10선 의원의 탄생이냐, 운명의 균형 추는 새벽에 기울었다. 자민련의 정당 득표율은 2.82%, 민주노동당은 13.03%로 나타났다. 자민련은 비례대표 1번의 원내 입성이 좌절됐고, 민주노동당은 기호 8번까지 원내에 진출했다.

정치인 노회찬은 촌철살인 언어로 정치권에서 유명했던 인물이다. 적절한 비유와 위트로 현실 정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이념 지향성과 무관하게 ‘노회찬 팬’이 많았던 이유다.

정치인 노회찬은 올해 7월 JTBC 간판 토론 프로그램인 ‘썰전’의 패널로 참여하며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대표적인 ‘언어마술사’, 노회찬의 촌철살인을 더는 경험할 수 없게 됐다. 정치인 노회찬은 7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소식을 들은 수많은 이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일반 조문객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굵고 짧았던 그의 인생은 향년 61세로 막을 내렸지만, ‘노회찬 정치철학’은 여전히 한국 정치의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살아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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