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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프랑스의 '이순신'에서 '이완용'이 된 '페텡' 장군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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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 구국의 영웅에서, 2차대전 때는 매국노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앙리 필리프 페텡 장군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차대전 당시 구국의 영웅에서, 2차대전 때는 매국노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앙리 필리프 페텡 장군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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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매해 11월11일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빼빼로데이'로 알려져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날로 유럽에서는 종전기념식이 열리는 날이다. 올해는 특히 종전 100주년을 맞이해 승전국, 패전국을 포함, 세계 70여개국 정상들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 종전식을 앞두고 종전식 개최국인 프랑스에서, 의외의 인물이 부각되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영웅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나라를 팔아넘긴 비시정부의 수괴로,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인물인 '앙리 필리프 페텡(Henri Philippe Benoni Petain)' 장군이 그 주인공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종전 100주년 기념식 전인 7일, 페텡 장군에 대해 "위대한 군인"이라고 한 발언은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인 논란거리로 떠올랐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이해 1차대전의 영웅 중 한명으로 그를 기리려 했지만, 이 역시 프랑스 내의 엄청난 비난 속에 좌절됐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전범재판을 받고 유배지에서 복역 중에 사망한 매국노를 영웅으로 기릴 수 없다는 여론이 드셌던 탓이다.

페텡 장군이란 인물은 세계전쟁사에서도 같은 사례를 들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로, 평가하기 매우 힘든 역사적 인물로 손꼽힌다. 일단 그는 19세기 인물로는 상당히 오래 살았다. 1856년 생인 페탱은 1951년 사망했고, 그의 살아생전에 프랑스는 1871년 보불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 1945년 2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전쟁과 함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수없이 많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그는 1차 대전의 영웅이 되면서 프랑스에서 입지가 우리의 '이순신' 장군처럼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다가, 2차 대전때는 나치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처럼 극적으로 변했다. 오히려 19세기 당시 평균 수명대로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쯤 사망했다면 말년의 치욕스런 오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참패하면서 프랑스는 알사스-로렌지방을 빼앗기고 프로이센은 주변 연방국들을 규합해 독일제국을 탄생시킨다. 1850년대 태어난 프랑스 청년들은 이 치욕을 씻는다는 호전적 분위기 속에 상당 수가 군인을 꿈꿨다.(사진=위키피디아)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참패하면서 프랑스는 알사스-로렌지방을 빼앗기고 프로이센은 주변 연방국들을 규합해 독일제국을 탄생시킨다. 1850년대 태어난 프랑스 청년들은 이 치욕을 씻는다는 호전적 분위기 속에 상당 수가 군인을 꿈꿨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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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텡은 원래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시골뜨기 소년에게 군인의 꿈을 심어준 것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 종군했던 큰할아버지의 영웅담이었다. 1850년대 태어난 다른 프랑스 소년들처럼, 그도 나폴레옹과 그의 '대군'이 유럽천하를 종횡무진했던 일대기를 들으며 군인의 꿈을 꿨다. 이후 청년기인 1871년 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에서 참패한 조국의 현실과 마주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됐다. 그는 이런 호전적 사회 분위기에서 187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면서 군인의 길을 겪게 된다.

하지만 원래 프랑스군 주류 출신이 아니었던 그의 군 생활은 1차대전 전까지는 밋밋했다. 그는 당시 주요 출세루트였던 식민지 파견근무 기간이 짧았기에 50 가까이 되서야 소령이 됐고,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는 퇴역 이후 노후준비를 계획하며 평탄한 군생활을 끝 마치려 했던, 평범한 군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군생활 막바지에 터진 1차 세계대전이 그의 삶과 위상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렸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19세기식 보병 돌격 작전에서 포병 중심의 화력전으로 뒤바뀐 것을 일찍 감지했던 그의 지휘력이 탁월함을 인정받고, 그의 상관들이 연이어 독일군과의 격전에서 사망하면서 그는 대전 발발 후 1년만에 군단장까지 승진한다. 1916년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베르됭 전역에서는 프랑스 제2군사령관으로 훌륭히 방어전을 치뤄냈고, 이듬해인 1917년에는 프랑스 육군 참모총장이 되어 전쟁을 총지휘했다. 이후 1918년 11월, 프랑스가 승전국이 되면서 페텡 장군은 프랑스 원수가 됐다. 여기까지는 영광의 세월이었다.

페텡(왼쪽)과 히틀러(오른쪽)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 페텡은 1940년 6월, 프랑스가 6주만에 나치독일에 함락되자 프랑스로 복귀, 괴뢰정권인 비시 프랑스의 수뇌가 되면서 매국노란 평가를 받게 됐다.(사진=위키피디아)

페텡(왼쪽)과 히틀러(오른쪽)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 페텡은 1940년 6월, 프랑스가 6주만에 나치독일에 함락되자 프랑스로 복귀, 괴뢰정권인 비시 프랑스의 수뇌가 되면서 매국노란 평가를 받게 됐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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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그는 군부의 거물로 각종 외교분야까지 담당하며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1934년 국방장관을, 이듬해 내무장관을 역임하다가 1939년에는 그의 제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 직후 집권하면서 스페인 대사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 직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나치 독일이 1940년 6월 프랑스를 전격 침공해 6주만에 파리를 함락시키면서 치욕의 세월이 시작된다.

당시 패전 직전에 몰려있던 프랑스 정부는 뒷수습을 위해 페텡을 본국으로 급히 소환했고, 페텡은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프랑코의 만류를 뿌리친 채, 프랑스로 돌아와 비시 프랑스의 수반이 된다. 비시프랑스는 독일 군정하에 놓인 파리를 대신해 비시를 수도로 하는 프랑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치 독일의 괴뢰정부였다. 페텡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국내 레지스탕스 소탕에도 협력하며 친 나치주의자로 비춰졌으며, 이에따라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하지만 그가 괴뢰정부일지라도 프랑스의 국체를 보존해준 덕분에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등 식민지를 잃지 않게 됐고, 1944년 독일이 비시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침공해 함락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모든 전력이 독일에 흡수되지도 않게 됐다.

전범재판장에 선 페탱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전범재판장에 선 페탱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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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나치독일이 1945년 5월 패망하자 그의 처분을 두고 프랑스는 당장 들끓었다. 비시 프랑스의 상징적 인물로서 비시파 제거를 위해서는 극형에 처해야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인데다 프랑스 내에서도 굴욕 속에서 조국을 지켜낸 방패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어 함부로 극형에 처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또한 해방된 조국, 프랑스의 대권을 장악한 드골 입장에서도 1차 대전 당시 그가 존경하던 장군이자 줄곧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던 상관을 재판에 세우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드골은 그에게 스위스로의 망명을 권유했으나, 페텡은 이를 거절하고 전범 재판장에 선다. 페텡은 첫 재판장에서만 변론을 한 후, 아예 스스로를 변호하지도 않았다. 그는 "저를 단죄하시려거든, 그것이 마지막 단죄이게 하십시오. 어떤 프랑스인도 합법적인 지도자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며 비시 프랑스에서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을 위해 변호할 말을 남겼다. "프랑스의 손에 저를 맡깁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많은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법정에서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동정여론이 오히려 커질 것을 우려해 종신형으로 감형됐고, 그는 일드외섬의 감옥에서 6년을 복역한 후 사망한다. 그의 일대기는 2차대전 이후 전범재판이 열렸던 유럽 뿐만 아니라 친일파 문제 등을 겪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크게 회자됐으며, 오늘날에도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 영웅이자 매국노로 불리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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