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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중세 기사들의 방패는 왜 '다리미' 모양일까요?

최종수정 2018.08.21 07:17 기사입력 2018.08.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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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 엎은 모양의 '히터방패'
전술 변화에 맞춰 형태 계속 변화
주요 국가, 지역, 기업 엠블럼으로 변천

중세 유럽에서 기사들이 사용하던 방패는 흔히 '히터실드'라고 불리며, 19세기 도검 수집가들이 마치 다리미 밑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있다.(사진=aliexpress.com, enechange.jp)

중세 유럽에서 기사들이 사용하던 방패는 흔히 '히터실드'라고 불리며, 19세기 도검 수집가들이 마치 다리미 밑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있다.(사진=aliexpress.com, enechange.jp)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흔히 중세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영화에서 눈에 띄는 사물 중 하나로 '방패'가 있다. 상단에는 각지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유선형으로 빠진 중세 방패의 모습은 오늘날 다리미 밑바닥 부분과 상당히 닮아있다. 그래서 영어로도 다리미 엎어놓은 듯 보인다고 하여 '히터(Heater)' 방패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이 히터방패 모양이 방어, 보안의 대명사처럼 되면서 보안프로그램 아이콘도 모두 이 히터방패 모양으로 구성돼있다.

대체 왜 다리미 엎어놓은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 방패라곤 시위 때 전경들이 사용하는 방패 외엔 볼 기회도 쓸 기회도 없는 현대인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여기에는 수천년 역사동안 수많은 전사들이 사용하고 버리며 개량한 방패의 역사가 숨어있다. 갑옷과 전술의 개량에 따라 방패의 모양은 여러 무기와 방어구 중 시대별로 가장 큰 변천을 겪었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 보병들은 커다란 원형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이 둥근 방패를 촘촘히 연결해 방진을 구성, 기병대나 별동대가 적의 후미를 치기 전까지 버티는 이른바 '망치와 모루' 전술이 주를 이뤘다. 이것이 다시 로마시대로 넘어가면서 직사각형 모양이면서 안쪽으로 말린 형태의 방패로 발전했고, 로마군의 장기인 거북대형, '테스투도(Testudo)'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마군의 상징으로 불리는 '테스투도' 진형을 복원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로마군의 상징으로 불리는 '테스투도' 진형을 복원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중세 초기에 주로 쓰이던 카이트 방패 모습. 원형 방패보다 폭을 줄여 움직이기 쉽고, 하반신까지 보호하기 위해 길쭉한 형태로 만들어졌다.(사진=위키피디아)

중세 초기에 주로 쓰이던 카이트 방패 모습. 원형 방패보다 폭을 줄여 움직이기 쉽고, 하반신까지 보호하기 위해 길쭉한 형태로 만들어졌다.(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후 이런 대규모 집단전이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됐고, 소수의 완전 무장한 기사들과 보병들간의 소규모 접전으로 전투형식이 변했다. 방패는 가장 만들기 쉽고 방어면적이 넓은 고대 그리스의 '라운드 실드(Round shield)' 형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원형방패는 방어면적이 넓은 대신 크고 무거워 운용이 힘들었다. 이로 인해 좀더 움직이기 쉽고, 하체 방어를 할 수 있는 길쭉한 형태의 '카이트방패(Kite shield)'가 유행하게 됐다.

이후 십자군 원정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중세 중기로 접어들면서 갑옷의 무장도나 견고성이 높아지자 카이트 방패보다 더 작은 히터방패가 유행하게 됐다. 히터방패는 카이트 방패보다 길이를 짧게하고 뾰족했던 밑부분을 갸름하게 바꿔놓아 좀더 가벼우면서 주로 투구쪽을 향해 날아오는 적의 화살을 막는데 유용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결국 전투 방식의 변화와 갑옷의 발전이 방패 모양을 크게 바꿔버린 셈이다.

물론 전신을 방어할만한 거대한 크기의 방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주로 보병과 접전을 펼치는 기사들이나 보병과 달리 공성전에 투입돼 적의 성벽을 향해 화살을 날려야하는 궁사나 석궁병들은 파비스(Pavise) 라는 넓적하고 거대한 방패를 등에 짊어지고 다녔다. 필요할 때 앞에 파비스 방패를 박아놓고, 적의 화살을 막는 용도로 쓰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포르쉐와 페라리 엠블럼에 사용된 방패문양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포르쉐와 페라리 엠블럼에 사용된 방패문양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방패를 쓰는 장면을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동양에서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방패가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유럽의 파비스 방패처럼 땅위에 박아놓고 궁수들이 방어용으로 쓰던 '장방패(長防牌)'라는 방패가 있었고, 적을 향해 칼을 들고 돌진하던 팽배수들이 사용한 '원방패(圓防牌)'가 함께 운용됐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총기가 사용된 16세기 이후에도 방패가 한동안 사용됐다. 수십개의 대나무를 묶은 '타케타바(竹束)'라는 나무 방패를 이용했다고 한다. 나무 판자 주위에 대나무단을 엮어 만들었으며, 공성전에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내부에 강선이 없던 화승총을 사용하던 시기라 총의 관통력이 현재처럼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화포와 총기류와 같은 개인화기가 발전하면서 방패는 점점 장식용으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각 왕실이나 가문의 문장을 집어넣거나, 화려하게 채색된 장식용 방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방패는 오늘날에도 유럽 여러 나라나 지역들의 깃발 속, 혹은 기업 엠블럼에 많이 녹아들어가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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