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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안시성 전투의 영웅, '양만춘'이 가공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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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안시성'에서 안시성주 양만춘 역으로 등장하는 조인성의 모습(사진=영화 '안시성'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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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임진왜란이 아직 한창 진행 중이던 1595년, 선조가 류성룡과 함께 용병술에 대해 논의하는 와중에 고구려 장수 2명을 언급했다는 일화가 실록에 남아있다. 선조가 "옛부터 좋은 장수를 얻어야 적국을 제압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얻을 수 없으니 어찌하는가?"라고 자문하자 류성룡은 "수(隋)·당(唐)의 무렵에 천하의 군대를 평안도 하나로써 대적할 때도 오히려 안시성주(安市城主)의 기재(奇才)와 을지문덕(乙支文德)같은 사람이 있어 중국의 역사에서도 찬미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어찌 적임자가 없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을지문덕과 안시성주는 1000년이 지난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명장의 대명사처럼 유명한 장수들이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양제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일세의 영웅으로 유명하고, 안시성주는 수나라 멸망 이후 고구려를 침공한 당나라 태종의 80만 대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알려진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楊萬春)'. 사극에서도 양만춘으로 등장하고, 올해 9월 개봉할 영화 '안시성'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해 조인성이 맡을 배역의 이름도 양만춘이다. 하지만 류성룡은 끝까지 양만춘이란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안시성주라고 표현할 뿐이다.

류성룡이 을지문덕과 달리 안시성주를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이야기한 이유는 양만춘이 당시 안시성 전투를 이끌었던 안시성주의 실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생몰연대는 물론 주요 행적조차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구당서, 신당서는 물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오죽하면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조차 "다만 사서에 그 성명조차 전하지를 않으니 심히 애석하도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안시성 전투 모습을 재현한 기록화(사진=전쟁기념관)

안시성 전투 모습을 재현한 기록화(사진=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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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양만춘이란 이름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현존 기록 중 양만춘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세기 명나라 때 소설로 알려진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란 책에 등장하는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 부분이다. 이 책은 보통 '당서연의'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 후한 시대를 배경으로 원나라 때 유행한 '삼국지연의'와 함께 역사소설로 유명하다. 이후 우리나라에 양만춘 관련 기록들도 이 소설 속 양만춘이란 이름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니 태어난 곳이나 어떻게 성주가 됐는지, 얼마나 뛰어난 장수였는지 활약상 등은 일체 알 수 없다.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안시성 전투와 관련한 사서의 기록들 뿐이다. 그는 고구려의 주요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평양으로 향하던 당 태종의 대군을 크게 무찌른 명장으로 등장하며, 3개월여에 걸친 수성전에서 대승을 거둔 뛰어난 사령관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그의 위명은 신라는 물론 고려, 조선에도 널리 전해졌다.

당시 고구려는 안시성주의 활약이 없었다면 앞날을 예견하기 힘들었다고 할 정도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642년, 연개소문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자 당 태종은 본군 50만 대군과 수송부대까지 합쳐 도합 80만 대군을 이끌고 역모를 일으킨 연개소문을 친다는 명분으로 645년, 고구려를 침공했다. 아직 쿠데타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구려 정정은 여전히 불안했고, 이에 따라 요하 인근 천리장성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짜여져있던 고구려의 주요방어선들이 일시에 돌파됐다. 당군의 기습전에 요동성, 개모성 등 6개 성이 일시에 함락됐고, 심지어 삼면이 절벽에 둘러싸여 천하 제일의 요새로 알려졌던 비사성(卑沙城)까지 당군의 야습으로 무너지면서 당군은 요동을 뚫고 평양을 향해 진군 중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 정예군 15만 병력이 출전해 방어에 나섰지만, 돌궐 등 주변 기마민족과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당 태종의 정예기병대는 고구려군을 대파했다.

644년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은 천리장성 내 방어선을 뚫기 위해 현도성, 개모성, 요동성, 비사성 등 방어가 취약한 지역들을 골라서 점령하고, 곧바로 오골성을 거쳐 평양성을 치고자 했다.(자료=대교학습백과)

644년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은 천리장성 내 방어선을 뚫기 위해 현도성, 개모성, 요동성, 비사성 등 방어가 취약한 지역들을 골라서 점령하고, 곧바로 오골성을 거쳐 평양성을 치고자 했다.(자료=대교학습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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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시에 돌격하면 평양까지 그대로 밀고갈 수 있는 상황에서, 당 태종의 심기를 건드리는 성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안시성'이었다. 원래 당 태종도 안시성의 험준함과 군대의 강성함을 보고 꺼려 공격을 주저하고 있었으나, 수하장수 이세적이 안시성에서 적이 배후를 치고 보급로를 끊으면 고립무원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함에 따라 일단 안시성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차 공격에도 안시성은 끄떡도 없었다. 장기전에 따른 보급 우려가 커지자 일부 장수들이 적병을 묶어둔채 바로 평양부터 진격하자는 전략을 내놓았지만, 역시 태종과 함께 오래 종군한 가신인 장손무기가 후방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안시성 공략은 장기전으로 바뀌었다. 태종은 50만 대군을 동원해 성을 뒤덮을 높이의 토산까지 쌓았으나, 역으로 토산을 빼앗기고, 3개월여에 걸친 혈전 끝에 결국 9월이 지나 만주 일대 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하는 수없이 퇴각한다.

중국 사서에서는 천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당군의 피해가 크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당 태종이 이후에도 계속 고구려 정벌을 후회했다는 것이나, 유언으로 아들 고종에게 요동정벌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내용 등을 고려하면 엄청난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야사에서는 심지어 이때 안시성주의 화살이 당 태종의 한쪽 눈에 꽃혀 당 태종이 애꾸눈이 됐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지만, 근거는 없는 이야기로 알려져있다.

이후 안시성 전투에서 당이 입은 피해는 중국 역사 내내 중국의 모든 왕조들로 전승된다. 당 태종의 병사들은 수당 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중국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몽골, 미얀마 등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도 모두 승리한 무적의 군대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당 태종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가서 참패한 안시성 전투는 두고두고 회자됐던 것.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고려와 조선을 정벌하기 결코 쉽지 않은 강국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이 전투의 영향이 컸다. 이를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민족사의 영웅이지만 그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으니 김부식의 말처럼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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