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빈집 112만가구…빈집 공포 대도시 수도권까지 확산
'구도심의 쇠퇴' 심각한 지역 불균형 초래·사회적 문제 대두
집 버리고 떠났지만 집주인 재산권 문제 얽혀 활용 어려워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70대 한 노인은 "동네에 빈집이 많아진지는 꽤 됐다"며 "건물 전체에 사람이 다 빠진 빌라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3층짜리, 6가구가 살 수 있는 한 빌라 앞은 쓰레기가 가득했다. 1층 창문은 파손돼 있었고 그 안으로 보이는 거실 천장은 내려 앉아있었다. 계단 앞 우편함엔 각종 우편물과 광고 전단이 터져 나왔고 바닥엔 철 지난 선거공보물도 널브러져 있었다.
같은 날 찾은 주안동의 한 골목도 비슷했다. 문짝이 없거나 건물 일부가 내려앉은 빈집이 곳곳에 눈에 방치돼 있었고 '점포임대'를 써 붙여놓은 빈 상가도 많았다. 이곳에서 고물상 영업을 하는 50대 박모씨는 "빈집이 아니라 쓰레기 집"이라며 "파손된 문 안으로 쓰레기를 몰래 던져 넣는 사람들이 많아 여름엔 벌레와 악취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고 성토했다.
빈집 공포가 지방 농어촌에서 대도시까지 번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2016년 기준 112만가구가 넘는다. 2000년 전 조사 당시 50만9000가구에 불과했던 것을 비교하면 급격히 늘어난 수치다. 특히 빈집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방 농어촌뿐 아니라 인천 같은 대도시에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인천의 빈집은 2010년 4만1000가구에서 2016년 5만3000가구로 늘었다. 부산은 같은 기간 4만1000가구에서 8만5000가구로 급증했다. 광주와 대전 역시 이 기간 1만가구 이상 늘었다. 초대형 도시인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기준 서울의 빈집은 9만4668가구로, 10만가구에 육박해 있다. 일부 지방 농어촌 지역에 한정됐던 빈집 문제가 이제 대도시의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대도시의 빈집은 화재나 붕괴, 범죄노출 등의 위험이 있고 이웃 집값에도 안좋은 영향을 준다. 빈집의 급속한 증가는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도 초래한다. 만약 여기에 저출산 문제까지 겹친다면 대도시 동네 몇 개는 지도속에서 없어질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거기간 주요 공약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빈집을 민선 7기(2018~2022년)의 핵심 정책으로 꺼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초대형 도시인 서울의 경우 도심 붕괴 사태까지 번지지는 않겠지만 심각한 지역 불균형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박 시장이 지난 22일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라는 책을 들고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으로 이사한 것도 빈집 등으로 인한 구도심 쇠퇴가 불러올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서였다.
더 큰 문제는 대도시의 빈집 사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주인들이 집을 버리고 동네를 떠났지만, 재산권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기대 심리로 집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보니 정부나 지자체가 빈집 개발을 주도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인천의 미추홀구 역시 빈집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집을 활용해 청년 창업공간을 만들거나 소규모 텃밭을 조성하는 등 각종 사업을 벌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상당수 중단된 상태다. 미추홀구 한 관계자는 "재개발이 중단된 곳에서 대체로 빈집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올해 하반기께 빈집 활용 사업이 다시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인구가 줄어드는데 주택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균형발전을 하지 못하고 강남과 같은 특정 지역으로 인구와 자본이 쏠리고 있다는 게 도시에서 빈집이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도시재생정책이 맞춤형으로 가야 하는데 선심성으로 가다보니 해결이 잘 안되는 상황이며, 국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인구대책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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