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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이케아 가구의 나라 '스웨덴', 군사강국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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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구스타브 2세 아돌프'시기 절정
근대적 '국민개병제' 최초 주창, 실행국
18세기 대북방전쟁 패배로 약소국 전락

17~18세기 스웨덴 왕국 최대 판도 모습(사진=http://salonurody.info)

17~18세기 스웨덴 왕국 최대 판도 모습(사진=http://salonurody.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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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첫 상대였던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유럽 역사 속에서 스웨덴이 한때 유럽 최고의 군사강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국내에서 스웨덴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복지국가'와 '이케아(IKEA)' 가구 등으로 한정돼있지만, 17~18세기 유럽사에서 스웨덴은 100여년간 매우 중요한 역사적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군사대국이었다.

스웨덴을 유럽 전쟁사에 길이 남긴 인물은 17세기 유럽 최고의 군사적 천재로 알려진 '구스타프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왕이다. 그는 근대 서양의 최고 군사천재로 이름이 높은 나폴레옹이 세계 7대명장 중 한사람으로 꼽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갖가지 군사적 혁신을 단행한 임금이자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개병제를 실시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스웨덴은 오늘날에도 국토가 45만295㎢로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국토가 북극권에 가까운 극한지역으로 인구는 1000만명 남짓밖에 안된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이 활동하던 17세기에는 인구가 200만명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당시 이미 인구가 수천만 단위를 넘어선 프랑스나 독일의 거대한 왕국들과는 인구면에서는 싸움이 되질 않았다.
스웨덴의 최전성기이자 군사강국기를 이끈 명군으로 나폴레옹이 세계사 7대 명장 중 한사람으로 꼽은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의 초상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스웨덴의 최전성기이자 군사강국기를 이끈 명군으로 나폴레옹이 세계사 7대 명장 중 한사람으로 꼽은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의 초상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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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2세 아돌프 왕은 이러한 인구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전국을 일정규모의 행정단위로 편성, 각지의 군 간부들에게 지역 단위별로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전 국민을 사실상 예비군으로 편제시켜 언제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근대적 개념의 국민개병제와 총력전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당시 유럽의 군대 편제는 대부분 용병제도로 병력 동원에 한계가 있었고, 스웨덴의 국민개병제는 인구가 적은 스웨덴이 30년전쟁이란 유럽 최초의 국제전에서 상당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밑거름이 됐다.

또한 그는 훗날 나폴레옹 전쟁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근대전의 기반인 야전 대포를 유럽 전장에 뿌리내린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까지 대포는 대부분 중동에서 도입된 대구경 대포가 주를 이뤘고, 야전에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쏘는게 아니라 성벽이나 개별 요새 등 고정된 건축물을 사격, 파괴하는데 주로 쓰였다. 그러나 그는 경량화된 소구경 대포를 말이 끌게 하는 기마포부대를 운용, 야전에서 대규모 포격전으로 화력을 투사시키게 함으로써 전장의 풍경을 바꿔놨다.

그의 군대는 30년전쟁에서 크게 활약했고, 스웨덴은 새로운 유럽의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그는 비록 30년전쟁 당시 독일 뤼첸 전투에서 너무 급하게 선봉에 서서 지휘를 하다가 적에게 포위되어 전사했지만, 이후 스웨덴은 약 100년에 걸쳐 강대국이자 '북방의 사자'로 군림했다. 독일 북부 일대와 핀란드를 지배하며 스웨덴 제국이라 불렸다. 스웨덴군은 또 유럽 내에서 엄정한 군기로 유명했으며 이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와 독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모두 스웨덴군을 벤치마킹해 군 제도를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전쟁(1700~1721)의 주요 전투인 폴타바전쟁의 전황을 지켜보는 칼12세와 그의 동맹인 우크라이나 카자크 반군지도자인 이반 마제파의 모습. 칼12세는 다리에 총격을 받아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그는 터키로 망명했고, 스웨덴은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잃게됐다.(사진=위키피디아)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전쟁(1700~1721)의 주요 전투인 폴타바전쟁의 전황을 지켜보는 칼12세와 그의 동맹인 우크라이나 카자크 반군지도자인 이반 마제파의 모습. 칼12세는 다리에 총격을 받아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그는 터키로 망명했고, 스웨덴은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잃게됐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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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군사강국 스웨덴의 위엄은 결국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끝나고 만다. 스웨덴의 마지막 군사천재로 알려진 칼12세는 15세의 어린나이에 즉위했지만, 1700년 러시아를 공격해 발트해 연안일대를 장악하고 북방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러시아 깊숙이 우크라이나 일대까지 쳐들어갔던 칼 12세는 군사적 위엄을 떨쳤지만 외교전에 실패해 주변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버렸고, 스웨덴을 꺾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러시아의 표트르1세와의 '대북방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터키로 망명하는 신세가 된다. 핀란드는 러시아에 빼앗기게 되고, 북독일지역 일대의 스웨덴 영토도 모두 상실하게 되면서 스웨덴 제국의 영광은 끝나게 됐다.

이후 스웨덴은 북유럽의 패권을 상실했고 19세기 초반에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하면서 군사강국의 명성은 사라진다.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한 이후 스웨덴은 전쟁없이 1,2차 대전 당시에도 중립국으로 전쟁에 개입치 않았고 20세기 들어서서 북유럽 복지국가의 모델이 됐다.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는 이케아 브랜드 속에 가려졌고,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유물로 변한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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