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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삼국지 전투의 꽃, '일기토'가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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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코에이 진삼국무쌍8 게임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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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흔히 사극이나 게임에서 장수들끼리 일대일로 맞붙는 개인전을 두고 '일기토'라 부른다. 특히 삼국지를 모티브로 한 수많은 게임에서 일기토가 안나오는 게임은 없다시피 할 정도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계에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용어다.
일기토는 한자로 보통 '一騎討'라 쓰며 한자어 기반이라 옛날부터 중국에서 쓰던 용어로 잘못 알려져있지만 중국에는 삼국지 시대는 물론 고대부터 이런 표현이 없다. 중국에서는 무사들의 일대일 접전을 보통 '단도(單挑)'라고 표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단기접전(單騎接戰)'이라고 표현한다. 일기토는 사실 일본에서만 쓰던 표현이다.

원래 일본어에서 '잇키우치(いっきうち)'라고 읽고 이를 한자로 쓸 때 일기토라 쓰던 것이 우리말 발음 그대로 들어와 굳어져서 생긴 말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코에이(Koei)사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가 쏟아져들어오면서 안 쓰이던 말이던 일기토란 단어가 장수간의 일대일 대결을 의미하는 단어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섬나라였던 일본은 집단전 개념이 늦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전투 전에 장수간 일기토를 벌이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 당시 이 전통으로 인해 초반에 큰 피해를 입는다.(사진= 일본 영화 '사무라이 II: 이치조지사의 결투' 장면 캡쳐)

섬나라였던 일본은 집단전 개념이 늦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전투 전에 장수간 일기토를 벌이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 당시 이 전통으로 인해 초반에 큰 피해를 입는다.(사진= 일본 영화 '사무라이 II: 이치조지사의 결투'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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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일기토란 글자 의미 그대로 장수가 단기필마로 나가 적장과 일대일로 겨루는 것을 뜻한다. 일본어 잇키우치나 중국의 단도, 우리식의 단기접전 모두 의미는 같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기토 형식의 개인전이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됐고, 이를 명예롭게 여겼던 일본에서 많이 유행했다고 알려져있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유목민들과 자주 접전을 펼쳤던 나라들의 경우엔 중세시대 이후 집단전 개념이 워낙 빨리 정착됐기 때문에 일본과 같이 일기토 문화가 오랫동안 남아있질 못했다.

이 일기토를 중시 여기는 문화 때문에 일본은 13세기 몽골과 고려 연합군의 침입을 받았을 때 속절없이 대패한 적도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장수가 직접 나와 자신의 가문 유래부터 줄줄 읊으면서 상대편에서 일기토에 응할 장수가 나올 때까지 칼춤 아닌 칼춤을 추는 사이에, 집단전이 이미 정착된 여몽 연합군은 일기토에 나온 일본 장수를 활로 간단히 쏴죽이고 그대로 진격해 남은 일본군을 박살냈다. 사무라이들은 이를 두고 명예를 모르는 오랑캐라며 여몽연합군을 비난했지만, 이미 그런 일기토는 소설 삼국지에서나 봤던 대륙의 사람들은 오히려 사무라이들의 자살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기토란 개념 자체는 사실 전쟁에서 대단히 원시적인 개념으로 분류된다. 일기토는 창칼을 다루는 냉병기 시대, 주로 인구도 적고 미약한 경제력으로 인해 개별 전투당 동원가능한 인원이 수백에서 많아야 수천 남짓한 지역에서나 벌이던 전술이란 것. 특히 고대부터 인구가 많았던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기원전 3세기 이전인 춘추전국시대에 개별 군단이 만명 단위로 넘어가는 집단군 편제가 가능한 시대로 빠르게 넘어갔기 때문에 삼국지의 무대가 된 기원후 3세기경에는 소규모 국지전 외에 일기토를 할 상황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중세 말에 기사들끼리의 마상창경기가 스포츠 형태로 남았지만, 실전에서 일기토를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알려져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서양에서는 중세 말에 기사들끼리의 마상창경기가 스포츠 형태로 남았지만, 실전에서 일기토를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알려져있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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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전투 기록에 일기토 상황이 묘사된 것을 좀체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일기토 다운 내용이 나온 것은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중 태조 이성계가 1383년 여진족 추장 호발도(胡拔都)와 싸운 기록이다. 실록에 의하면 "... (호발도가) 속으로 태조를 깔보아, 그 군사는 남겨두고 칼을 빼어 앞장서서 달려나오니, 태조도 또한 단기로 칼을 빼어 달려나가서 칼을 휘둘러 서로 쳤으나, 두 칼이 모두 번득이면서 지나쳐 능히 맞히지 못하였다"고 묘사돼있다. 이 일기토에서 태조 이성계는 호발도의 말을 쏴서 호발도를 땅에 떨어뜨렸고, 여기에 크게 놀란 호발도가 도망가면서 사기가 꺾인 여진족들은 크게 패한다.

애초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보병 방진 게임이었던 서양의 전장에서는 더욱 일기토가 정착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소규모 봉건 영주들이 난립한 중세시대가 도래하고 기사돌격전이 유행하면서 기사 개인의 무력이 중시되는 시대가 잠시 열리기도 했지만, 중세 말기부터 집단전이 다시 유행하면서 사령관들은 점점 안전한 후방에서 지휘를 내리는 전략가들로 변하게 됐다. 개인간 명예를 위한 일대일 결투 방식은 20세기 초반까지 유지됐지만, 이 역시 살상보다는 먼저 피를 보는 쪽이 지는 '퍼스트 블러드' 방식으로 변하면서 전장터의 일기토란 중세시대 음유시인들의 서사시나 판타지에서나 볼법한 내용으로 남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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