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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역사에 접근하는 안이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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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물괴', 역사적 사실 간과한 채 '반정 실패' 창작하는데 몰두

[이종길의 영화읽기]역사에 접근하는 안이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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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소라 부는 갑사(甲士) 한 명이 꿈에 가위눌려 기절하자, 동료들이 놀라 일어나 구료(救療)하느라 떠들썩했다. 제군(諸軍)이 일시에 일어나서 보았는데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吹螺赤) 방에서 나와 서명문(西明門)으로 향해 달아났다. (중략) 모두들 놀라 고함을 질렀다. 취라치 방에는 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22년(1527년) 6월17일자의 내용이다. 영화 '물괴'는 이 간략한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괴수 영화다.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이는 조선을 펼친다. 그런데 실제 공포는 따로 있다. 중종(박희순)을 몰아세우는 영의정 심운(이경영)과 관료들이다. 물괴라는 허상을 앞세워 백성을 핍박하고 조정을 어지럽힌다.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이다. 성희안,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면서 왕으로 추대된다. 반정공신들의 전횡을 막을 수 없었기에 사실상 허수아비 왕. 그런데 중종은 권력의 암투와 부침이 심했던 16세기 전반에 역설적이게도 38년(1506년~154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의 왕으로 무사히 살아남았다. 중종 이전의 어떤 조선 국왕도 이렇게 오래 권좌에 있지 못했다. 오히려 이전 열 명의 왕들 가운데 세 명은 강제로 쫓겨나 묘호도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가운데 두 명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중종이 정치적으로 장수를 누린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으나, 명 황제 가정제와 맺은 특별한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고하게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국내 정치 무대에서도 서서히 권위를 쌓아갔다. 권신과 사람이 충돌하는 시기에 초반에는 이쪽저쪽을 기웃거렸으나, 결국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고 그대로 시행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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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괴에서 이런 중종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조금만 삐끗해도 왕좌에서 쫓겨날 듯한 나약한 왕으로 묘사될 뿐이다. 영화의 배경인 중종 22년은 기묘사화가 마무리된 뒤다. 기묘사화란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신진사류가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 재상들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을 가서 사사됐고, 김정ㆍ김식 등은 귀양을 갔다가 사형 또는 자결했다. 이들이 사라진 정국은 다시 공신들의 차지였다. 중종은 그런 반전을 정당화해줌으로써, 자신이 견제하고자 했던 반정공신들의 품 안에서 왕위를 유지하는 자기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왕위를 보존하기 위해 공신들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야말로 위상이 즉위 초기의 상황으로 돌아간 셈. 그러나 이때 중종은 14년 전 처음 즉위할 당시의 그가 아니었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중종의 시대'에서 "여태껏 왕권의 행사에 심한 제약을 받고 늘 신료들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중종의 정치 무대 경험은 이미 15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며 "이 정도의 정치 경험이라면 조정의 어느 신료들에 비해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썼다. "어떻게 해서라도 왕의 권위를 확보하려는 중종에게 그동안의 학습과 경험은 큰 자산이었다"고 했다.
기묘사화 뒤에도 조선의 정국은 정쟁과 권력의 부침이 빈번하면서 불안정했다. 기묘사화를 주도한 권신들의 연이은 병사 외에도 경빈 박씨와 복성군의 제거, 심정의 몰락, 김안로의 몰락, 대윤과 소윤 사이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 등으로 정국이 늘 어지러웠다. 하지만 중종은 대명 사대를 앞세워 모든 신료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유교적 천하관과 도덕률에 기초한 사대를 국시의 하나로 천명한 조선왕조에서 대명 사대라는 원칙에 시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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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괴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채 새로운 반정의 실패를 창작하는데 몰두한다. 조선 최고의 장수로 등장하는 윤겸(김명민)과 중종의 관계마저 끈끈하게 그리다가 얼버무린다. 이 때문에 다시 칼을 집어 드는 윤겸의 행위는 단순하게 나타나고, 중종 역시 나약한 왕으로 묘사되고 만다. 컴퓨터그래픽이 부실하고 이혜리의 연기가 허술하다는 등 다양한 흥행 실패 이유가 거론되지만, 애초 이야기의 뼈대가 앙상했던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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