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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고조선의 마지막 순간

최종수정 2018.08.27 13:42 기사입력 2017.10.1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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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호랑이' 쓰러뜨린 배신자의 종말은 비참했다

기원전 109년, 중국 한(漢)나라 사신이 고조선의 국경 일대에서 피살됐다. 한나라 무제(武帝)의 명령을 받아 고조선을 겁박하던 섭하(涉河)였다. 섭하는 고조선의 우거왕(右渠王)에게 복종을 강요했지만, 우거왕은 이를 거부했다. 맨 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섭하는 국경으로 자신을 배웅하던 고조선의 장수를 살해하고 복귀했다. 한나라 무제는 섭하를 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에 임명했다. 화가 난 고조선은 섭하를 기습 공격해 죽여버렸다. 이제 고조선과 한나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기원전 109년 가을, 한나라의 공격이 시작됐다.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은 수군 7000명을 거느리고 산동반도에서 출발했다. 좌장군(左將軍) 순체는 육군 5만명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진군했다. 양복 부대는 수로를 이용해 고조선의 수도 왕험성(王險城-왕검성ㆍ王儉城이라고도 한다)으로 직행했다. 한나라 군대의 규모가 7000명에 불과한 것을 파악한 고조선은 성문을 열고 나와 공격을 감행했다. 양복의 부대는 패하여 무너졌고 양복은 산 속에 숨었다가 10여일 후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때 육로로 진군한 순체의 5만명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발대가 고조선에 패하여 흩어져 버렸고, 본대도 패수(浿水) 서쪽에서 고조선 군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한나라 무제는 새로이 위산(衛山)을 파견해 고조선과 협상을 시도했다. 고조선은 태자(太子)를 보내 사죄하기로 하고 군사 1만여 명을 딸려 보냈다. 위산과 순체는 태자가 이끄는 1만여 명의 군사들을 의심했다. 패수를 건너오면서 무장을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태자는 한나라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고, 패수를 건너지 않고 되돌아 와버렸다. 강화 회담은 결렬됐다.

 위산이 돌아와 그간의 사정을 한나라 무제에게 보고했다. 화가 난 무제는 위산을 죽여버리고 다시 고조선에 대한 공격을 명령했다. 좌장군 순체는 패수를 지키던 고조선 군대를 격파하고 강을 건넜다. 순체가 고조선의 수도 왕험성 서북쪽에 주둔하고, 양복도 왕험성 남쪽에 주둔하면서 왕험성은 포위되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순체는 급히 공격할 것을 주장했고, 양복은 포위한 채 항복을 유도하자는 입장이었다.

 좀처럼 왕험성이 함락되지 않자, 한나라 무제는 제남태수(齊南太守)였던 공손수(公孫遂)를 파견했다. 공손수가 도착하자 순체는 양복 때문에 싸울 시기를 놓쳤으며 양복이 고조선과 내통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공손수는 양복을 결박하고 양복의 군대를 순체의 군대와 합쳐 새롭게 편성했다. 이러한 사실을 한나라 무제에게 보고하자, 황제의 명령 없이 함부로 행동했다 하여 공손수는 참수당하고 말았다. 이제 고조선에 주둔하던 한나라 군사들은 모두 좌장군 순체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부대 정비를 마친 한나라 군대가 왕험성을 맹렬히 공격했다. 비록 왕험성이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장기간 한나라 군대에게 포위되자 내부 균열이 발생했다. 조선상(朝鮮相) 로인(路人), 상(相) 한음(韓陰), 니계상(尼谿相) 참(參), 장군(將軍) 왕겹 등이 모의했다. "처음에 누선장군(양복)에게 항복하려 했는데, 누선장군이 지금 체포되고 좌장군(순체)이 홀로 양군을 지휘하여 전세가 더욱 급하게 되었다. 능히 한나라 군대와 싸워낼 수 없을 것 같은데, 왕은 또 항복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상 한음, 장군 왕겹, 조선상 로인이 도망쳐 한나라에 투항했다. 투항과정에서 로인은 사망하고 말았다.

 최초 모의한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먼저 한나라에 투항했고, 니계상 참은 고조선에 남았다. 니계상 참이 우거왕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 고조선에 남아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참은 세 명이 투항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홀로 남아있으면서 오히려 우거왕의 신임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거왕에게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함이었다. 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상 참은 사람을 시켜 우거왕을 죽인 후 한나라에 투항했다.

 국왕이 사망했지만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우거왕의 신하였던 성기(成己)가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한나라에 대항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좌장군 순체는 다시 방안을 강구했다. 우거왕의 아들 장(長)과 로인의 아들 최(最)를 활용했다. 고조선 최고위층의 아들들이 백성들을 회유하고 성기를 주살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성기는 살해되었고 왕험성은 함락되었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나라는 그 자리에 진번(眞番), 임둔(臨屯), 낙랑(樂浪), 현도 등 4개 군(郡)을 설치했다. 흔히 말하는 '한(漢) 4군(郡)의 설치'다.

 고조선을 배신한 이들은 한나라의 공신(功臣)이 되었다. 이들의 행적은 『한서(漢書)』 권17, 공신연표(功臣年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군 왕겹은 평주후(平州候)로 책봉되었으며 식읍(食邑) 1480호(戶)를 하사받았다. 니계상 참은 홰청후로 책봉되었으며 식읍 1000호를 받았다. 상 한음은 추저후로 책봉되었으며 식읍은 540호를 받았다. 우거왕의 아들 장은 기후(幾候)가 되었으며 로인의 아들 최는 저양후(沮陽候)가 되었다.

 중국 주(周)나라 때 작(爵)은 공(公)ㆍ후(侯)ㆍ백(伯)ㆍ자(子)ㆍ남(男) 5등으로 구분되었다. 당시 기준은 토지의 크기였다. 공ㆍ후는 100리, 백은 70리, 자ㆍ남은 50리 3등으로 나누어졌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면, 토지의 크기보다 거주민의 규모 즉 호(戶)가 기준이 된다. 열후(列侯)는 보통 3000호 미만의 후국(侯國)을 영유하는데, 1000호 내외가 압도적으로 많다. 열후는 크게 왕자후(王子候), 공신후(功臣候), 은택후(恩澤候)로 구분된다. 고조선을 배신하고 한나라의 책봉을 받은 이들은 모두 공신후가 되었다.

 후국의 규모는 공적(功績)의 대소나 황제와의 친소(親疏)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거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한 니계상 참보다 장군 왕겹의 식읍이 더 많다. 이는 투항 당시 니계상 참보다 장군 왕겹의 공로가 더 컸음을 의미한다. 왕겹의 뚜렷한 공로가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의 직함이 '장군(將軍)'이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아마 고조선 내부의 군사 기밀 확보나 군부에 대한 영향력 등을 감안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조선을 직접 공격해 멸망시킨 좌장군 순체와 누선장군 양복은 어찌되었을까? 한나라 무제는 순체가 한나라로 복귀하자, 군공을 서로 다투고 시기하여 계획을 망친 죄를 물어 기시(棄市)했다. 순체는 참수되어 저잣거리 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양복도 순체를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군사를 움직여 많은 병사를 잃어버린 점을 문책받았다. 다만 주살시키지는 않고 속전(贖錢)을 받은 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고조선의 신하로서 한나라에 투항한 이들과 상반된 결과였다. 고조선 멸망에 있어 한나라의 공격보다 고조선 내부의 투항이 결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식읍을 받은 장군 왕겹은 기원전 108년 4월에 책봉되었는데 이듬해인 기원전 107년에 돌연 사망했다. 왕겹은 후사가 없어 대가 끊어졌다. 상 한음은 기원전 108년 4월에 책봉되어 19년 뒤인 기원전 91년에 사망했다. 한음 또한 후사가 없어 대가 끊어졌다. 고조선을 배신하고 한나라의 공신이 되었지만, 그들의 부귀영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두 번째로 많은 식읍을 받은 니계상 참은 기원전 108년 6월에 책봉되어 11년 뒤인 기원전 99년에 사망했다. 참은 도망친 고조선 포로를 숨겨준 죄로 옥에 갇혀 병들어 죽었다. 우거왕의 아들 장은 기원전 107년 3월에 책봉되었다가 2년 후인 기원전 105년에 처형되었다. 고조선의 모반을 획책했다는 죄목이었다. 이미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 4군이 들어선 상태에서 이들이 고조선의 포로를 숨겨주거나 모반을 획책했을 가능성은 작다. 이들은 고조선 멸망에 결정적 역할을 하여 이미 한나라의 공신이 되어있었다. 이런 입장에서 다시 한나라를 배신하고 고조선을 위해 어떤 행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한나라가 고조선의 불씨를 완전히 없애는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것이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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