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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행동주의 투자, 기업사냥인가 가치제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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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1990년 개봉된 영화 '귀여운 여인'은 고만고만한 배우였던 줄리아 로버츠를 일약 '세계의 연인'으로 떠오르게 한 로맨틱 영화의 고전이다. '프리티 우먼, 워킹 다운 더 스트리트~ 프리티 우먼~'이라는 노래와 함께 로데오 거리를 누비며 '묻지마 쇼핑'을 하는 콜걸 줄리아 로버츠, 또 영화 엔딩에 백색 리무진을 타고 와 꽃다발을 건네주는 백만장자 리처드 기어.


그런데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인 이 영화에서 백만장자인 남자 주인공 리처드 기어의 직업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분은 계실까. 그는 좋은 말로는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 시쳇말로는 '기업사냥꾼'이다. 그는 적대적 M&A를 통해 기업을 인수해서 몇몇 부서를 쳐내고 가급적 퇴직금 없이 직원들 해고한 뒤 시장가치가 올라가면 비싼 값으로 되판다. 심지어 정치권 로비를 통해 우량 회사의 자금줄을 일시적으로 막아 버려 도산 위기에 처하게 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넘기게 하는 방법도 불사한다. 오로지 기업을 조각조각 나눠 파는 일만 반복할 뿐 회사의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

올해 자본시장의 화두 중 하나는 '주주 행동주의'다.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란 대량 주식매수를 통해 특정 기업의 주요 주주로 등재한 후 경영에 관여함으로써 기업 및 보유주식 가치의 상승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방식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1월 사모펀드인 KCGI가 재계 순위 14위(2017년 기준 매출 15조원)인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9%를 확보, 주주 친화정책 강화를 요구하면서 '한국형 주주 행동주의'의 서막을 알렸다.


여기에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재계의 반발은 거세다. 과거 엘리엇이나 소버린, 칼 아이칸, 헤르메스 등 글로벌 헤지펀드들에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기업의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등 모든 부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기업사냥꾼'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면 과거와는 달리 주주들의 공조를 기반으로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트렌드라는 우호적 입장도 존재한다. 이들은 애플, 넷플릭스, 이베이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도 장기적 기업가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사업 구조조정 등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행동주의가 기업들에게 순기능으로 작용하다고 있다고 반박한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면 리처드 기어는 영화 말미 한 선박회사에 대한 적대적 M&A를 포기하고 오히려 투자를 통해 그 회사의 건실한 경영을 돕는다. 단지 '남의 회사 경영권을 빼앗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사냥꾼'에서 우호적 투자자로 변신한 전제는 이 선박회사의 오너가 사업에 대한 애정과 비전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은 극심하다. 매 사건마다 머리 숙였던 반성과 쇄신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행동주의 펀드가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냥꾼'일까, 아니면 정말로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수호자'일까.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행동주의 펀드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연기금, 운용사, PE의 활동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계가 이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대신 경영권 보호장치를 강화하라고만 요구한다면 시대적 흐름은 물론 사태의 근본원인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방증이 될 뿐이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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