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인권은 어디로 가고 흉악범 인권만 존중하느냐." 여론의 분노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흉악범 얼굴을 마스크나 모자로 가려준 기간은 길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살인 등 강력사건 피의자 얼굴은 언론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경기도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은 흉악범 얼굴 공개를 둘러싼 논쟁의 흐름을 바꾼 전환점이었다. 2009년 1월31일 일부 언론이 강호순 얼굴을 공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론은 대체로 환영했다.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됐다. 이제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한 법적인 근거규정이 마련된 지도 6년이 흘렀다. 강호순을 시작으로 김길태, 김수철, 오원춘, 박춘풍, 김하일, 김상훈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마' 얼굴이 차례로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흉악범 얼굴공개는 여론재판 위험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여론의 판단이 이미 끝난 상황에서 법관은 얼마나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흉악범 얼굴 공개 이후 그의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신상털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중이 법관을 자처하면 응징의 칼날은 엉뚱한 곳으로 향할 수 있다.
'토막살인' 주인공 얼굴이 연이어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스토리의 '잔상(殘像)'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 볼 부분이다. 그런데도 흉악범 얼굴 공개에 여론이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공감대 때문 아닐까.
유영철 얼굴을 가려줬던 마스크는 벗겨야 한다. 다만 흉악범의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얼굴 공개 대상 선정도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경찰청장은 신상 공개와 관련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얘기는 그동안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얼굴 공개를 결정했다는 의미 아닌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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