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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어느 공무원 지망생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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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지난 8일 충남 천안 서북구 한 모텔. 3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가 나왔다. 그의 죽음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불거진 이유는 유서에 담긴 충격적인 내용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부모님께 죄송하다."
이 남성은 공무원 지망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에 걸쳐 공무원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해 1월이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충남의 한 군청에서 근무하게 됐다고 가족에게 알렸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은 얼마나 기뻤을까.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을 나누지 않았을까. 그는 출근한다면서 매일 아침 집을 나섰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을 보냈고,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유서 내용처럼 거짓이었다.

공무원 지망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수험가의 거리 풍경.

공무원 지망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수험가의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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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도록 대부업체(제3금융권)로부터 2000만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월급을 받아온 것처럼 행세하고, 번듯한 직장인의 모습처럼 꾸미지 않았을까. 그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했다. 이자율 높은 대부업체의 '빚'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술렁였다. 그의 죽음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 취업의 벽에 막혀 절망하는 이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20대의 올해 겨울은 유독 춥다. '취업 한파'가 더욱 거세게 휘몰아치는 탓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를 기록했다. 1999년 통계 기준 변경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실업률 통계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은 제외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은 20%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의 20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에 매진해온 이들이다. 어학 능력과 자격증은 기본이고 차별화된 스펙을 쌓고자 눈물겨운 시간을 보낸 이들이다. '바늘구멍' 취업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청춘이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의 심정은 강풍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아닐까.

최선을 다해 그 공간을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허허벌판이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지난해 공감을 얻었던 것도 현실의 한계에 대한 분노와 막막함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20대에게 희망으로 다가올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사회를 향한 '냉소'만 깊어지지 않을까. 점점 더 희망을 잃어가는 상실감,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다는 말이다.

공무원 지망생의 죽음이 남긴 사회적인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2016년은 '흙수저 논란'에 담긴 냉소의 기운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충만한 이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냉소의 기운'을 사라지게 하려면 그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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