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아시아블로그]직권상정, 그 피할 수 없는 유혹

최종수정 2015.12.10 11:59 기사입력 2015.12.10 11:59

댓글쓰기

[아시아블로그]직권상정, 그 피할 수 없는 유혹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2009년 7월 22일 국회를 통과한 미디어법은 종합편성채널(종편) 탄생의 계기가 됐지만 정치권 풍경을 바꾼 분수령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2012년 5월 소위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린 국회법 개정안의 출발점이 바로 미디어법이다.

미디어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여당이 단독 처리한 대표적인 법안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김 의장은 이를 받아들여 이윤성 국회 부의장을 통해 기습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데 뒤엉켜 온갖 폭력이 난무했고 쇠사슬로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물론 그 전까지 직권상정을 통한 법안 처리는 종종 있었다. 9대 국회에 직권상정 조항이 신설된 이후 1985년 4월 방송법이 첫 대상이었고 1996년 노동법 개정안은 최종 부결됐지만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오르기도 했다. 또 2004년 방송법과 종합부동산세법도 직권상정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미디어법 처리는 정치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미디어법 직권상정의 후유증은 상당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한여름이었지만 여야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18대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싸우지 말자'는 취지로 임기 마무리 시점인 2012년 5월25일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폭력이 폭력의 사슬을 끊은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인데, 아이러니하다.
직권상정 요건이 강화된 것도 이 때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 또는 회부된 안건에 대해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야는 선진화법 개정을 통해 85조에 천재지변, 전쟁 같은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 등 세가지의 각호를 달았다. 바꿔 말하면 각호에 해당하는 전제조건이 없다면 의장은 안건의 심사기간을 지정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직권상정을 가급적 피하겠다는 여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19대 국회 들어 첫 의장 직권상정이 지난 2일 있었다. 국회법 개정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가 숙려기간을 이유로 거부하자 86조2항을 근거로 여당이 직권상정을 제안했고 야당의 동의를 얻어 의장이 승인했다.

하지만 여당은 일주일 만에 다시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경제활성화법안과 테러방지법안 등이 야당의 동의를 얻기 힘들자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댔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원하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다시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가 앞섰다.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개정에서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것은 폐단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또 상임위 심사와 의결 절차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