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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군인 아버지의 굴레

최종수정 2015.10.28 11:03 기사입력 2015.10.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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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정치경제부 차장

신범수 정치경제부 차장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던 대학 동기가 있었다. 공대를 다니던 그는 '삶의 괴로움'을 종종 토로하곤 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한겨울에 구보(조깅이 절대 아니다)를, 그것도 웃통을 벗고 해야 했다는 것이다. 눈 쌓인 아파트 단지를 웃통 벗은 부자(父子)가 뛰어다니는 모습은, 아버지에게는 자랑이었고 아들에겐 고문이었다.

약속을 어긴다거나 게으름을 피우다 걸렸을 때는 어김없이 매를 드셨다. 가장 호되게 '빠따'를 치셨던 건 성적이 떨어졌을 때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친구는 매가 무서워서인지, 원래 공부에 소질이 있던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성실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ㆍ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광기'를 드러냈다. 분노를 내재한 그의 괴팍한 성향에 대해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에게 혐의를 두었고 그 역시 완전히 부정하진 못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정말 '강한 아버지'를 둔 공대 출신의 친구 이야기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뒤 얼마간 경험을 쌓고 건축 분야에서 창업했다. 이제는 월급쟁이 친구들의 술값을 계산해주는 자타공인 중산층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최근 술자리에서 우리는 자녀 교육에 대해 열을 올리며 대화했다. 그는 때때로 아이들에게 매를 든다는 사실을 괴로운 듯 고백했다. 무엇보다 그를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체벌의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따지기도 전에 체벌은 거의 '본능적으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아버지의 훈육 방식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는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과 자신의 체벌 습관 사이 모호한 연관성을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혼란은 증오와 존경을 동시에 한가슴 속에 품기 어려운 혹은 괴로운, 보통 사람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하물며 개인사도 그럴진대 한 국가의 그것에 하나의 '올바름'만을 허용하겠다는 신념에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그 친구가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친구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체벌 등 군대식 문화가 일반적이던 1970년대, 내 아이만은 성공시켜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본능은 자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했다. 우리의 선배들은 그렇게 그 시절의 보편성에 충실했다.

우리가 그 폭력 속에 내재한 헌신과 사랑을 통해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서,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나이가 들수록 깊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아버지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삶의 태도로 연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성찰은,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존경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 과거의 발전적 계승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깊은 상처를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는 성숙한 힘도 우리에게 허락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그 친구의, 우리의 아버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사랑하는 진정한 길이라고 믿는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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