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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통영 '묻지마 범죄'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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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지난 8월10일 새벽 경남 통영에서 노부부가 칼로 살해됐다. 범행 수법은 끔찍했다. 남편은 27곳을 찔려 현장에서 사망했다. 부인도 13곳을 찔린 채 숨을 거뒀다. 잠을 자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당했다.

노부부를 살해한 피의자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300m 떨어진 곳에서 살던 대학교 휴학생 A(22)씨였다. 처음에는 살해에 나선 특별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 술에 취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살해에 나선 '묻지 마' 범죄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수많은 언론에 '통영 묻지 마 범죄'로 보도됐다. 살인 범죄는 많은 사람에게 후유증을 남긴다. 공포의 잔상이다. 피해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이웃, 더 나아가 해당 뉴스를 접한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묻지 마 범죄는 두려움을 증폭할 수 있다.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묻지 마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공포는 심화할 수 있다. 그래서 '막연한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함부로 묻지 마 범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아시아블로그] 통영 '묻지마 범죄'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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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통영 노부부 살해사건은 묻지 마 범죄가 아니다.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따르면 A씨 사건은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A씨는 군대를 전역한 후 복학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A씨 부모는 모두 청각 장애인이다.
A씨는 학창 시절부터 부모의 장애 문제로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친구들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는 A씨의 가슴을 후벼 파는 송곳으로 다가왔다. A씨는 이 사건 범행 직전 지인과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듣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이후 A씨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등의 취지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경찰서 지구대를 찾아가 경찰관에게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검찰은 A씨가 노부부의 집에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부부 중 한 명인 남편 B씨는 전 어촌계장이었다. 레저시설 업체들이 어촌계장이었던 B씨와 선착장 사용 계약을 맺은 이후 A씨 부친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배를 자유롭게 정박하지 못했다. B씨는 술에 취하면 A씨 부친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평소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극도의 우울함에 젖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성을 잃고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한 결과는 끔찍했다. 불만의 표출 방식이 살인이라니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재판을 통해 중형이 선고된다고 해도 '상처'는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B씨 가족이 느낄 충격과 아픔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A씨 부모는 평생 '속죄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죄인의 심정으로 아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처참할까.

이번 사건처럼 순간의 흥분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극단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누군가의 분노조절 장애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사회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정(情)이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게 될 '비극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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