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를 살해한 피의자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300m 떨어진 곳에서 살던 대학교 휴학생 A(22)씨였다. 처음에는 살해에 나선 특별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묻지 마 범죄는 두려움을 증폭할 수 있다.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묻지 마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공포는 심화할 수 있다. 그래서 '막연한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함부로 묻지 마 범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통영 노부부 살해사건은 묻지 마 범죄가 아니다.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따르면 A씨 사건은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A씨는 군대를 전역한 후 복학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A씨 부모는 모두 청각 장애인이다.
이후 A씨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등의 취지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경찰서 지구대를 찾아가 경찰관에게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검찰은 A씨가 노부부의 집에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부부 중 한 명인 남편 B씨는 전 어촌계장이었다. 레저시설 업체들이 어촌계장이었던 B씨와 선착장 사용 계약을 맺은 이후 A씨 부친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배를 자유롭게 정박하지 못했다. B씨는 술에 취하면 A씨 부친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평소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극도의 우울함에 젖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성을 잃고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한 결과는 끔찍했다. 불만의 표출 방식이 살인이라니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재판을 통해 중형이 선고된다고 해도 '상처'는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B씨 가족이 느낄 충격과 아픔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A씨 부모는 평생 '속죄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죄인의 심정으로 아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처참할까.
이번 사건처럼 순간의 흥분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극단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누군가의 분노조절 장애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사회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정(情)이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게 될 '비극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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