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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살인범 추적,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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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때로는 영화보다 더 미스터리한 현실도 있다. 영화의 반전은 상상력이 가미된 결과다. 반면 어떤 현실은 상상조차 어려운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구미제'가 돼 버린 사건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1986~1991년 세상을 공포로 떨게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 만료에 따라 영구미제가 돼 버렸다. 영화 '그놈 목소리' 배경이 됐던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 이른바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역시 2006년 영구미제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수사기관이 뒤늦게 진범을 찾더라도 그를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다는 의미다. 피해자 가족에게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이 또 있을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오늘도 유유히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피해자 가족은 가슴 짓이기는 고통의 시간을 이어가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가 7월24일 일명 '태완이법'을 통과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 태완이법은 형사소송법 제253조의 2(공소시효의 적용 배제)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0년 이후 발생한 형법상 살인사건(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은 공소시효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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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일명 '태완이법'으로 불리지만 정작 김태완군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에 따라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1999년 5월20일 대구 효목동 골목에서 '황산테러'를 당한 김태완군은 끝내 숨을 거뒀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도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공소시효마저 만료됐다.
16년간 아들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섰던 어머니의 집념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비록 자기 아들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김군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은 역사에 의미 있게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형사소송법은 '태완이법'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이제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공소시효 만료에 따라 법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어지게 됐다. 국회가 '태완이법'을 2000년 이후 사건에 적용하는 것으로 '소급'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법의 안정성을 위해 '소급 입법'은 자제해왔는데 이번에는 소급 적용을 명문화했다. 그만큼 태완이법 시행은 파격적이고 부담도 뒤따른다. 수사당국이 법 개정에 걸맞은 변화와 실천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영구미제 위기에 몰렸던 사건들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다시 사회적인 관심 대상이 되고, 수사기관들의 재수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특정 시점이 지나면 영원히 범인을 잡지 못한다는 절박감의 공유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소시효 폐지로 상황은 달라졌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시간의 여유를 확보했지만, 거꾸로 과거와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수사에 임할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더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제도의 변화가 곧 실질적인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수월하게 하는 환경을 마련해줄 뿐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같은 사건을 과거에만 존재하는 진짜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단 한 건의 '영구미제'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수사기관의 절박한 마음과 그에 따른 실천 아닐까.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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