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검사를 의미하는 최고의 '칼잡이'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김진태 검찰총장이다. 그런 경험을 지닌 검찰 수장이 지난 2013년 12월2일 취임 일성으로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강조했다.
그런 김 총장이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했다. 검찰에 주어진 칼날의 위험함을 잘 알기에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고 조언한 게 아니겠는가. 변화의 방향은 옳았다. 그렇게 검찰 변화를 이끌수만 있다면 '김진태'라는 이름 세 글자는 사법 역사에 또렷하게 남을 수도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번에 또 한 명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삶을 마감했다. 주인공은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다. 그는 4월9일 오후 3시22분께 북한산 형제봉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이 나를 국민 세금 떼어먹은 파렴치범 취급을 하더니 이제는 가족들까지 다 죽이려 한다."
성 전 회장이 지난 3월 어머니 묘소를 찾아 남긴 말이라고 한다. 검찰 수사 과정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이끈 것은 아닐까. 검찰은 자원외교 비리의혹을 파헤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성 전 회장 아내와 아들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른바 '별건(別件)수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별건수사는 양날의 칼이다. 가족에게 수사의 칼날을 옮기면 피의자를 굴복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당사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설 정도의 심적 고통을 느낀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아 사건을 정리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미안함과 분노, 체념이 교차하며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목숨을 끊은 이들이 20명에 이른다. 검찰 수사 때문에 한 달에 1~2번씩 초상(初喪)을 치르는 게 어디 정상인가.
성 전 회장이 숨지자 서울중앙지검은 이런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검찰 수사를 받던 중에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검찰 반응은 낯설지가 않다.
지난해 12월13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정윤회 문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을 때 서울중앙지검은 이런 견해를 밝혔다. "수사 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으로 생각한다."
단어 몇 가지만 달라졌을 뿐 검찰 반응은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판박이다. 검찰 수사 관행을 되돌아보겠다는 얘기를 할 때도 있지만 역시 말뿐이다. 별건수사 유혹에 빠져들어 심리적 압박으로 혐의 입증을 수월하게 하려는 관행은 변함이 없다.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강조하던 김 총장의 약속과 다짐도 결국 공염불이 되는 것일까. '죽음의 그림자'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검찰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것을 검찰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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