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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반도체 영업기밀 공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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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반도체 기술 확보 위해 美·日행…"공장 구경도 '영업기밀'이라며 막아 섰는데"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혈안이 돼 구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영업 기밀을 고용노동부가 직접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반도체 전문가들과 산업통상자원부까지 모두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데 비 전문가인 시민단체와 고용부는 영업기밀이 아니라며 국민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83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반도체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이 회장은 미국 마이크론과 기술 이전 협약을 맺고 당시 이윤우 반도체연구소장(현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한 주요 연구원들을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샤프등에 연수 보냈다. 64K D램 개발이 목표였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국가적 기밀 사안인 반도체 기술을 한국에 이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이크론의 반도체 공장에 연수를 간 연구원들은 기술 약소국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마이크론은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를 기밀이라며 접근조차 못하게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 연구원이 몰래 서류를 봤다가 그게 빌미가 돼 연구원 전원이 한국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샤프에 나갔던 연구원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필요한 정보마다 영업기밀이라는 설명이 이어지고 간단한 메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연구원들끼리 공장 곳곳에 구역을 나눠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거리와 길이를 재고 함께 모여 샤프 반도체 공장의 도면을 그려나갔다. 몇 장의 도면이 만들어졌지만 소용 없었다.

이 회장을 비롯해 이 고문 등이 직접 나섰다. 50~60년대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현지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엔지니어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가난한 조국에 봉사한다는 애국심으로 뭉쳐 삼성에 입사해 반도체 기술을 전수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현재 세계 반도체시장 1위 기업의 토대가 된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이 건립됐다.
최근 고용부가 공개하겠다는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놓고 시민단체와 고용부는 "기밀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개 대상에 공장 도면, 유해인자 목록과 측정 위치 및 측정 결과, 생산 라인별 근로자수, 라인과 공정의 이름 등이다. 외부로 유출될 경우 반도체 생산라인 공정별 면적은 물론 설비 배치, 화학 성분을 통해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 제품명까지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이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정보 중 상당수가 포함된다. 과거 우리 연구원들이 미국, 일본에서 그토록 얻으려 하다 쫓겨나기까지 했던 정보를 우리 정부가 앞장서 공개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이 아닌 정부부처, 시민단체가 해당 정보가 영업기밀인지 여부를 판단할 재량은 없다. 과거 영업기밀에 해당된다며 외부 공개를 꺼렸던 고용부가 손바닥 뒤집듯이 공개하겠다고 나선 점도 유감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근로자의 백혈병 산재 판정 소송에서 근로자측을 대변했던 변호사 출신이 산재보상정책국장으로 온 뒤 이 같은 지침이 바뀌었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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