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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인지부조화와 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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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10여년 한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서 인용하기도 했다. 전직 국세청장이 뇌물을 받았음에도 결백을 주장하자 그 심리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왜곡된 과거의 기억이 확신으로 무장돼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것" "오랜 기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정무직 공무원에 오른 피고인이 인사와 관련해 지방청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명예롭지 못한 사실이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 방어기제를 발동, 공소사실을 적극 부인하는 한편 제3자에게 투사 또는 전가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인지부조화의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텍스트라 할 만 하다.


인지부조화 이론을 제시한 레온 페스팅거 교수는 못 쓰는 필름을 상자에 담아 버리는 일을 대학생들에게 시켰다. 재미 없는 단순 작업이었다. 한 집단에는 20달러를, 다른 집단에는 1달러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이 재밌다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중에 20달러를 받은 학생들은 "정말 지루했다"고 했지만, 1달러를 받은 이들은 재미있었다고 했다. 고작 1달러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서 스스로 속마음을 속였다는 해석이다.

"나 자신을 내려놓기가 두려웠습니다" 결코 하지 않았다며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한 연예인이 마약 투약 사실을 인정하면서 내놓았던 말이다. 인지부조화라기보다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된 전략으로 보이지만, 그 표현 속에는 처절한 자기애가 느껴진다. 잣대는 자신에게 갖다댈 때 휘어지기 십상이다.


스승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셨건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모든 것을 왜곡시키는 블랙홀처럼, 자기애는 가장 강력하다. 2019년 봄, 한국 사회는 숱한 거짓말들과의 싸움을 여전히 벌이고 있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이 휘어진 채로 살 수밖에 없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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