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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억과 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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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뜻하는 불교 전문 용어는 여러 가지 있지만 최근 가장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팔리어 '사띠(sati)'다. 사띠는 불교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로 '念'이라고 한역됐으며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mindfulness'로 번역된다. 마인드풀니스의 우리말 번역어인 '알아차림' '마음챙김' '마음지킴' 때문에 사띠가 원뜻인 기억과 무관하게 정신 집중 작용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초기 불교 문헌에 사용된 사띠라는 용어는 무엇보다 명상의 대상을 '마음속에 담고 있거나 붙들어두는 작용', 다시 말해 '잊지 않음'을 뜻한다.


기억과 '주의 집중'이라는 사띠의 두 가지 이중적 의미는 우리가 무언가에 주의를 집중할 때 그 대상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 또한 용이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어떤 것이든 기억은 정신 집중을 요한다. 집중된 의식은 또렷한 인식으로 이어지고 그 인식 내용은 잊지 않고 기억된다. 최근 심리학에 따르면 기억은 작업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뉘는데, 사띠를 작업 기억으로 본다면 이 용어에 대한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기억이 이처럼 중요하게 다뤄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발명돼 있던 시대에도 승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구전을 통해 전승했다. 구전을 위해 계발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결한 심리적 기능이 암기력이라는 사실은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선정 수행에서도 기억이라는 심리적 기능이 강조됐다는 사실은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은 한편으로 기억이라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시간이 약이다"는 말처럼 때로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억할 수 없는 것을 반복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는 프로이트의 유명한 말을 기억해본다면, 외상과 반복 사이에는 내적 연관성이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외상은 환자가 기억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환자는 그것을 그의 상징적 담화의 일부분으로 만듦으로써 회상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 결과, 그것은 무한히 반복되며 환자를 괴롭히려 되돌아온다. 결국 기억은 외상의 치료에 필요한 심리적 기능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망각이라는 저 기억의 한계와 싸워온 역사다. 잊지 않기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잊히지 않기 위해 역사에 남는 일을 했던 사람들에게 기억은 현실적인 것이기도 하다. 승리와 패배를 반복했던 오나라와 월나라의 오랜 전쟁사는 땔감을 베고(臥薪) 쓸개를 맛보며(嘗膽) 흐려지는 치욕의 기억을 붙들려고 했던 부차와 구천의 피나는 노력을 기록하고 있다. 자칫 복수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을 사건을 인간 승리의 역사로 만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던 중국인들 역시 망각이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에 저항하는 인간의 노력을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다섯 해가 됐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 장면을 지켜봤던 모든 한국인에게 그것은 아직 집단적 외상으로 남아 있다. 기억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언제까지 계속 기억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누가 이 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까? 그중 누가 반복해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게 될까? 역사와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대답은 자명하다.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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