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밥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 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 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 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 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쇼핑백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종일 자기 손을 꼭 붙들고 시골길을 걷던 아저씨가 저 혼자 버스를 타고 휭하니 가 버렸을 때 당황스럽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좀 멋지고 신나는 일이 생길 것만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리송했을 것이다. 그러다 심심해졌을 것이다. 또 겁이 났을 것이다. 멀리서 반짝이던 개밥바라기도 문득 사라진 한밤엔 종내 훌쩍였을 것이다. 하루 꼬박 지나 다저녁때 큰아저씨가 올 때까지 쇼핑백은 자꾸 서러웠을 것이다. 아까아까 늦은 아침에 한 중학생 언니가 "너 참 이쁘네. 어디서 왔니?"라고 물었을 땐 민들레가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않았어도 당장 따라가고만 싶었을 정도였다. 아저씨는 모를 거다. 정말정말 모를 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걱정을 해 주었는지 내 곁에 한참을 앉아 있어 주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저렇게 싱글벙글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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