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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유모차 끄는 아빠, '남성 육아' 천국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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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 당연한 스웨덴, 사회제도와 인식변화…가부장적인 대한민국 불량 아빠들도 달라질까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오전 4시30분. 어느새 집을 나설 시간.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여전히 꿈나라. 흐뭇한 아빠 미소를 전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자 시린 새벽 공기가 밀려온다. 4월이지만 밖은 여전히 춥다. 패딩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종종걸음을 옮긴다.


#오후 11시. 오늘도 늦은 귀가. 술자리 1차만 하고 돌아왔는데 녀석들은 꿈나라다. 이번에도 흐뭇한 아빠 미소가 인사의 전부다. 침대에 파김치가 된 몸을 던져 놓은 뒤 잠시 눈을 감았건만…. 눈을 떠보면 어느새 그 시간이다. 새벽 공기를 마셔야 하는….

"아이 기저귀 갈아준 게 몇 번이나 돼요." 아내의 기습 질문에 '몇 번이더라…'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어본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아내는 당황한 남편을 바라볼 뿐이다. "셀 수 없이 많다"가 정답인데 그걸 손으로 세고 있으니…. 이미 '불량 아빠'를 자인하는 꼴이다. 실제로 아이 기저귀를 갈아준 것은 손에 꼽을 수준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의 삶'에서 한 발 떨어져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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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역할은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오는 일. 가끔(?) 아이들과 공놀이하는 일. 가족과의 여행길에 열심히 운전하는 일이 전부는 아닐 텐데…. 육아는 오로지 엄마의 몫인 것처럼 외면해온 시간들. 이 땅의 불량 아빠가 어디 나 하나뿐이랴. 면피성 생각도 잠시, 미안한 마음을 어찌 감출 수 있겠는가.


초등학생이 돼 버린 아이들이 다시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달라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잠시 상상에 빠져 본다. 유모차를 끌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 남들은 출근길로 분주한 시간에 아침 공기와 맑은 햇살을 듬뿍 머금고 산책을 나서는 상상이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빠들. 거리에서 '육아 아빠'들을 만나면 가볍게 눈인사도 나누고. 밖에 나오니 좋은지 생기발랄하게 웃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할까. 한국에서는 상상 속의 풍경일지 모르지만 스웨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영국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김건씨는 자신의 14년 북유럽 생활을 토대로 '스웨덴 라떼파파'라는 책을 펴냈다. 육아 문제와 관련한 한국 남성 특유의 고정관념에 길들여져 있던 김씨가 어떤 변화 과정을 통해 아빠 육아의 길에 들어섰는지에 대한 경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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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아빠의 육아 휴직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다. 아빠가 육아 휴직을 신청하면 회사의 축하 인사를 받을 정도다. 스웨덴에서는 부모에게 480일의 육아 휴직 수당을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데 아빠도 90일 이상은 반드시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


스웨덴의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나이 때의 남성과 여성 90% 안팎은 직업이 있다. 맞벌이 가정은 베이비시터나 조부모 도움 없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한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란 생각은 상상하기 어렵다. 1974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복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스웨덴도 처음부터 아빠 육아가 활성화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 육아휴직 신청 비율 10%를 넘기는 데 20년이 걸렸다. 스웨덴 역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변화의 토대는 사회 제도였다. 스웨덴은 임신에서 출산까지 비용 일체를 국가(건강보험)가 책임진다. 아이들의 정기검진과 백신 접종, 각종 치료(치과 포함)도 국가가 부담한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 또는 아빠가 수당까지 지원받으며 결근을 선택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사회복지 제도나 근무 환경이 아빠 육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인식이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평소에는 아이 삶에 신경도 쓰지 않다가 어떤 일이 생기면 목소리를 높이며 아빠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습성도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나온 '파파 리더십'은 참고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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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 소설가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의 책으로 펴냈다. 베트남 영웅으로 대접받는 박 감독이 어떻게 리더십을 획득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다가서자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놓았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의 여러 가정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마음의 문'을 닫는 이유, 육아 아빠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젊었을 때는 일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다 노년이 되면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아빠들. 스트레스를 술로 풀어보지만 건강만 해칠 뿐이다. 은퇴한 아빠들이 집에서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북유럽에서 육아 아빠의 삶을 경험한 김씨의 얘기는 곱씹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시대의 산물인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존재감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진짜 아빠의 존재감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직후부터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류정민 정치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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