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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섬진강 3―겨울/최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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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위로 어스름이 얹히면

술 허기에 시달렸다


주홍과 보라 더러는 초록 입자로

쪼락쪼락 매달린 노을이

눈물 같은 향기를 강 위로 내려 보내면

나는 늘

어깨가 아팠다

왜가리는 물속 노을을 쪼고 있었으나

물속의 태초는 흔들릴 뿐

저문 강의 시간은 늘 빨라

주춤

주춤거리던 어둠이

강 위로 백사장으로 먹물처럼 내려앉자

노을은 자진했다

자진하는 노을 속으로 나는 새 한 마리의

용골도 나처럼 늘 아플까


세상의 모든 허기를 강이 보듬어 흐른다면

그 자리엔 또 다른 허기로 채워지고 말 것인가


안 되는 말들에

어깨가 아파 왔다.

[오후 한 詩]섬진강 3―겨울/최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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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시를 두고 '허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확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실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역사적이거나 지금-이곳의 어떤 현실과 접속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사실은 '허기'가 "또 다른 허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시인의 비관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체 "안 되는 말"이란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다시 "어깨가 아파 왔다"라고 시를 마무리 짓는 건 아무래도 어색해 보인다. "안 되는 말"엔 당위의 문맥도 있겠지만, 앞선 문장을 부정하고 싶으나 또한 수락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없이 참담한 심정이 "용골"처럼 맺혀 있는 듯하다. 가슴을 저미는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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