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트렁크/임헤라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당신은 떨어진 잎들을 트렁크에 넣는다 허름한 트렁크를 열고 차곡차곡 잎을 담는다 열어젖힌 트렁크에 바람을 채운다 새들이 트렁크에 앉는다 구름이 트렁크에 들어가 새들과 함께 어떤 하늘이 된다 당신은 트렁크를 들고 바다로 갈 예정이다 트렁크 안에는 자꾸 구름이 흘러다닌다 새들, 납작한 새들이 종잇장 같은 구름에 묻혀 흘러다닌다 당신의 트렁크는 수평선에 버려질 것이다 당신은 수평선까지 이 트렁크를 끌고 가 트렁크 속에 담긴 모든 것을 털어 버릴 계획이다 가슴속에 굽이쳤던 말들을 하나하나 내다버릴 마음이다 마음을 휘저었던 당신의 애인과 말들을 트렁크에 담는다 트렁크는 잠긴다, 옮겨진다, 흔들린다, 흘러간다, 열린다, 뒤집힌다, 가라앉는다 트렁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후 한 詩]트렁크/임헤라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 시의 최종적인 전언은 누가 읽더라도 마지막 문장일 것임에 틀림없다. "트렁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맞다. 그렇지만 온통 "마음을 휘저었던" 그 모든 것들이 이 단 한 문장으로 그렇게 쉽게 해소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이 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오히려 마지막 문장 바로 앞까지의 저 길고 굽이진 문장들이 아닐까 싶다. "떨어진 잎들을 트렁크에 넣"고 "수평선까지" "트렁크를 끌고 가 트렁크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을 털어 버릴" 때까지 "가슴속에 굽이쳤던" 그 어쩔 수 없는 마음들 말이다. 문득 오래전에 잊었던 트렁크 하나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