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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세종·마오가 통독한 천년의 '제왕학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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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자치통감
294권 300만자로 이뤄진 사마광 자치통감
고대 中 16개조 1362년史 사실 위주로 서술
공자 춘추·사마천 사기와 中 3대 역사서
칭화대 교수가 800쪽 압축해 쓴 책 번역본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자치통감 표지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자치통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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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조차도 어렵사리 구축한 진 제국이 한 세대도 채 버티지 못할 것으론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테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했을 때가 기원전 221년, 이후 3대째 왕 자영이 유방에게 항복한 게 통치 첫 해인 기원전 206년이니 고작 15년에 불과하다. 반면 뒤를 이은 유방은 변변한 집안이나 가문의 세력도 없었지만 진의 뒤를 이은 통일왕조를 일으켜 수백 년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둘의 차이, 영정(시황제의 이름)과 유방 혹은 천하를 통일한 진과 한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는지를 살피는 일은 긴 중국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전 포인트다. 그러나 이 같은 주제나 내용을 다룬 연구나 책은 과거에는 거의 없었다. 통일 진ㆍ한으로부터 1000년을 훌쩍 넘긴 북송시대의 역사가 사마광(1019~1086)은 '자치통감'에서 이 물음에 대해 답이 될 만한 단서를 내놓는다. 결정적인 차이는 소프트웨어, 즉 문화를 대하는 태도였다. "진나라를 계승하지 않고는 한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진이 강력한 법치에 따라 통일 후 마련했던 각종 법률ㆍ제도는 고대 중국은 물론 현재까지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허나 분서갱유ㆍ만리장성 등에서 드러나듯 문화적 토대를 가벼이 여기고 하드웨어 구축에 몰두하면서 왕조는 단명했다. 중국 칭화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장궈강 교수는 "진시황은 소프트웨어 완비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의식이나 사상분야는 말할 수 없이 단순화해 발전이 정체되고 말았다"면서 "나라가 안정되면 밭을 갈아 생계를 유지하는 외에는 어떤 문화적 요소도 불필요하다 여겼는데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경시한 막무가내식 태도"라고 지적했다.


반면 유방에 대해선 지도력, 리더십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꿴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는 "지도자란 앞에서 방향을 결정하는 존재이지 구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존재는 아니다"면서 "판단하고 실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존재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권력이지 능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2014년부터 학교 안팎에서 자치통감을 강해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엮어 책을 펴냈다. 최근 국내서도 출간된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자치통감'은 장 교수의 책을 번역한 것으로 중국어 이외 문자권에서 처음 완역본을 펴냈던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해제를 썼다. 일종의 자치통감 입문서다. 자치통감은 공자가 쓴 춘추,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중국의 3대 역사서로 꼽힌다. 장 교수의 표현대로, 사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역사적 저서로서 가치로 봤을 때도 여느 중국의 역사서를 앞선다. 책이 나온 지 1000년 가까이 지난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17번이나 읽었다는 일화는 이 책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마오는 중국통일 꿈꾸며 17번이나 읽고
세종은 수시로 보고 해설서까지 만들어
정약용은 앉은 자리에서 줄줄줄 읊었고
김옥균은 암살당한 순간에도 손에 쥔 책


800쪽에 달하는 책의 분량은 입문서치고는 많은 듯 보이나 원본 자치통감이 전체 294권, 300만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역사를 정리한 사관이었던 동시에 당대 현실정치에도 적극 나섰던 사마광은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고대 중국 16개조 136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 형식으로 정리했다. 송 황제 영종이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쓰라"는 명에 따른 것이었다.


영종은 왜 그랬을까. 안팎으로 어수선한 당시의 상황을 신경 쓰는 데도 적잖이 고민하는데, 역사책을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 없어서였다. 즉,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자치통감 원본 294권도 과거의 사료를 추리고 축약해 압축시켜 놓은 것이다. 사마광은 영종의 뒤를 이은 신종 때 이르러 책을 완성하고선 "사마천 사기, 반고 한서가 나온 이후로 역사책이 번거로울 정도로 많습니다"면서 "아무 벼슬이 없는 포의를 입은 선비조차 이 많은 역사책을 두루 읽지 못하는데 하물며 인주께서는 하루에 만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느 겨를에 두루 읽겠습니까"라는 글을 황제에게 올렸다.


애초 책의 첫 독자를 왕으로 삼았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치통감은 기본적으로 치세(治世), 지도자의 다스림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춘추처럼 교훈을 주기 위한 경서라기보다는 사실 자체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편년체라는 역사서 서술방식도 한몫했다. 편년체는 분량을 적게 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두루 망라하는 방법으로 자치통감의 첫 번째 독자로 염두에 뒀던 영종ㆍ신종에게는 더할 나위 없어 적합한 방식이었던 셈이다.


편년체에 대비되는 기전체의 경우 사기가 첫손에 꼽히는데, 이는 읽는 재미는 있겠지만 분량이 턱없이 많아지고 역사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도자에게 바친다는 점, 과거 사실을 비춰 현재를 챙기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자치통감은 수백 년이지나 먼 유럽 땅에서 나온 군주론과 오버랩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책을 헌정할 당시 중세 유럽이 전쟁으로 얼룩져 권력과 지식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은 세종대왕을 비롯해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개화기 사상가 김옥균을 관통하는 책이다. 세종은 수시로 읽는 것은 물론 경연에서도 신하들에게 권했고 따로 해설서를 펴내기도 했다. 정약용은 앉은 자리에서 읊을 정도였다 하고 김옥균은 암살당하는 순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층위에서 독해가 가능한 책인데 그만큼 책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라고 권 교수는 책 서두의 해제에서 전했다.


그는 "사람과 사회, 국가의 상호관계와 작용 그리고 그것이 변화하는 종합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의 경향을 이해하며 읽는 것은 수준 높게 접하는 방식"이라며 "단순한 사건 기록도 그 시대 사람의 관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 읽게 된다"고 전했다. 책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선 저자가 살아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건 비단 역사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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