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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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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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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강(江)은 아펜니노 산맥에 속한 팔테로나 산에서 시작되어 리구리아 해까지 240㎞를 쉼 없이 흐른다. 토스카나를 적시며 굽이치는 동안 피렌체와 피사를 통과한다.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 다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옛 이야기에 사로잡힌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베키오 다리에서 맞는 저녁은 달콤하다. 그러나 피사의 오래된 성과 교회,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단정하고 굳센 다리 위에서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황금빛 태양을 목격한다면 피렌체를 영영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피사는 아르노강이 리구리아 해에 뛰어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도시다. 11세기 말 제노바ㆍ베네치아와 패권을 다투는 해상공화국이었다. 13세기 들어 제노바에 밀렸지만 이후에도 문예의 중심지로서 위엄을 잃지 않았다. 아르노 강의 여러 세기에 걸친 퇴적작용이 해안선을 서쪽으로 밀어내 오늘날 피사는 항구도시가 아니다. 우리에게 이 곳은 아름다운 대성당과 신비로운 사탑(斜塔), 우리 사고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꾼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과 함께 떠오른다.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Duomo di Pisa) 동쪽 광장에 약 55m 높이로 지은 8층 탑이다. 2015년 현재 5.5도 정도 북쪽으로 기울어 있다. 1590년 어느 날, 갈릴레오는 피사의 사탑 7층에서 납으로 만든 지름 10㎝짜리 공과 떡갈나무로 만든 공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공은 나란히 땅에 떨어졌다. 낙체의 속도가 무게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뒤집은 결과였다. 같은 높이에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질량과 관계없이 동시에 떨어진다. '갈릴레이의 낙체의 법칙'이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했다는 증거나 기록, 목격자가 없다. 갈릴레오는 1564년 오늘 피사에서 태어나 피사대학교를 나온 이 도시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갈릴레오가 아무도 모르게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더구나 실험을 했다는 해에 갈릴레오는 파도바 대학에서 일했다. 갈릴레오의 낙체 실험은 그의 전기를 쓴 빈첸초 비비아니가 지어낸 이야기다.


갈릴레오는 천재였다. 수학자로서나 물리학자로, 천문학자로 초인적인 경지에 올랐다.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찰했으며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비롯해 수많은 천체를 발견했다. 갈릴레오가 발견한 이오ㆍ에우로파ㆍ가니메데ㆍ칼리스토를 '갈릴레오 위성(Galilean satellite)'이라고 한다. 그가 감수해야 했던 종교재판은 시대를 앞선 천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을지 모른다.

갈릴레오는 교황 우르비노 8세가 연 종교재판에 출석하기 위해서 1633년 2월 13일 로마에 도착했다. 그의 혐의는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대한 대화'라는 글에서 교회가 믿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천동설'을 부정하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인 '지동설'을 설파한다는 것이었다. 심문은 1633년 4월 12일에 시작되었다. 이 시대 종교재판이란 '답정너'였다. 종교재판은 피고가 유죄임을 전제로 했다. 피고는 변론이 아니라 고백과 회개를 요구받았다. 갈릴레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고문을 받지는 않았다. 갈릴레오는 피렌체의 메디치 대공이 후원하는데다 우르비노 8세 교황과도 친분이 돈독했다. 또한 수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독실한 신자였기에 과학을 손에 쥐고 신의 권능에 도전하려 들지 않았다. 69세의 갈릴레오는 6월 22일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이단적 견해를 "맹세코 포기하며, 저주하고 혐오한다"는 문서에 서명한다. 이때 돌아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지만 이 또한 피사의 실험처럼 지어낸 이야기다. 훗날 제자들에게 말했을지는 모르겠다. 갈릴레오는 1642년 1월 8일 제자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은 갈릴레오의 유언을 듣지 못했다.


갈릴레오가 신념을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양심을 저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진리를 보았고, 진리가 불변임을 알았을 것이다. 갈릴레오 이후 천문학의 역사가 어디를 향해 흘러갔는지 우리는 안다. 여름밤 올려다본 하늘의 뭇 별들이 그려내는 동심원을 바라보면서도 지구의 과속(過速)을 느끼는 지혜는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들이 발견해낸 선물이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는 전설은 거짓말이다. 그래도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며, 우리는 이 현상이 진실임을 안다. 아르노 강이 굽이치고 머뭇거리며 기어이 리구리아 바다에 이르듯 진실은 항상 제 길을 찾아낸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듯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빛의 고을에는 오직 빛이 있을 뿐이다. 들어라, 거기 네 사람.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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