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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이것은 꼼수인가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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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이다. 설을 앞두고 정부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발간한 '문재인 정부 600일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든 생각이다.


44쪽짜리 이 책자는 대국민 홍보용 자료집이다. 각 부처 홈페이지에 올리고, 연휴 기간엔 KTX 객실에도 비치했단다. 정부 치적 홍보, 좋다. 필요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한데 이번 홍보 책자의 그래프를 이용한 '이미지 조작'은 거의 왜곡 수준이다. 그러니 실소를 넘어 냉소가 나올 수밖에.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경제성장률'이 대표적이다. 막대그래프인데 2.7%인 한국의 '막대'가 1.6%인 프랑스, 독일의 두 배 크기다. 실수로 보인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기초연금' 막대그래프를 보자. 기초연금 지급액은 2017~2018년과 2018~2019년에 5만원씩 올랐다. 똑같은 증액인데 그래프 막대는 2018~2019년에 두 배 정도 껑충 오른 것으로 보일 지경으로 차이가 크다. 이건 약과다. 국공립 유치원 증가를 보여주는 그래프는 아예 작심한 듯하다. 국공립 유치원은 2017년 1만395곳에서 2018년 1만896곳으로 501곳 늘었다. 증가율이 5%가 채 안 된다. 한데 그래프의 높이는 얼핏 봐도 2018년이 2017년의 두 배가 넘는다. 그야말로 현 정부 들어 국공립 유치원 수가 '획기적'으로, '가파르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도르트문트 공대 통계학과의 발터 크래머 교수가 쓴 '벌거벗은 통계(이순)'란 책에는 '그래프 조심!'이란 파트가 있다. 여기에는 밑둥을 자르거나 세로축과 가로축의 간격을 넓히거나 좁혀 이미지를 조작하는 수법이 실렸다. 이를테면 가로축의 간격을 넓히면 변화가 완만해 보이고, 좁히면 작은 변화도 급상승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같은 물가상승률이라도 완만하게 보이고, 저조한 경제성장률도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단다. 그러면서 크래머 교수는 "눈은 이성이 이미 지쳐 있더라도 아직 수용할 능력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수용 능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통계 조작자들의 믿음을 소개한다.


그는 이를 그래프 '성형수술'이라 했는데 홍보를 맡은 이들은 곧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각 이미지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고, 수용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여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그래프에서 '수술' 흔적이 보이는 '문재인 정부 600일~'의 의도가 수상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소식을 그대로 넘어갔지만 이는 심상치 않다. '실수'라면 시스템의 문제이고, '꼼수'라면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징조 혹은 대국민 기만의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 가을이 왔음을 모두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보다 더한 조작도 있긴 하다. '나쁜 생각(제이미 화이트ㆍ오늘의책)'에 실린 사례다.


1990년대 영국의 보수당 정부 때 일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시민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단다. 문제는 그러려면 대학교 증설, 학생 증원이 필요한데 교수진 확보, 시설 증축 등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기술전문대학(technical college)을 '대학교'라고 부르기로 하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대학교' 수는 거의 두 배로 됐고 '대학 교육'을 받은 시민이 급증했단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화장실을 공공 편의시설로 이름을 고치면 냄새가 사라지냐고 꼬집었다.


막대그래프만 멋지면 우리네 삶이 나아진 것이냐고 묻는 것은 트집인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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