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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프랑스 부유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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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는 유류세 인상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근본적인 배경은 부유세 폐지에 있다. 부유세는 1989년 저소득층의 사회보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됐다. 재산(동산과 부동산)을 매년 1월1일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는 부채를 공제한 뒤, 그래도 남는 금액이 80만유로 이상(10억원 상당)이면 누진 세율로 1.5%까지 매기는 재산세의 일종이다(우리나라는 부동산 총액에 대해서만 재산세를 부담한다).


이런 부유세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폐지했다. 그 대신 동산을 제외하고 부동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부동산보유세(Impot sur la Fortune Immobiliere)를 신설했다. 부유세의 완전 폐지가 아닌 부분 폐지라고 본다.

개혁 성향의 마크롱 정부가 왜 부유세를 폐지했을까. 과세 대상에 동산(주식 등)이 포함돼 있어 국외 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이로 인해 이웃 경쟁국인 독일보다 세금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이유에서였다(독일은 1997년 부유세를 폐지했다).


이에 대해 서민층이 반발하며 매주 토요일 노란조끼를 입고 저항하는 것이다. 놀란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대토론'을 제안했고, 매주 주요 대도시 및 권역별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설명한다. 부유세는 전체 세수 중 1% 미만에 불과하다. 이를 폐지하면 훨씬 많은 국외 자본이 프랑스로 유입되고, 그 결과 경제 활성화가 더 촉진될 수 있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된다고. TV로 생중계되는 토론장에서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국가 계획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지만, 100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서민 홀대, 부자 중시' 정책 방향성이 프랑스 헌법 정신에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계급장을 떼고 벌이는 토론에서 반대론자들은 "강력한 민중 봉기는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아슬아슬하다.

이렇게 반발이 계속되는 것은 부유세가 지닌 '강한 정치적 함의(forte connotation politique)' 때문이다. 세금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사안이다.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과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간접세 비중이 높은 나라다. 따라서 서민층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데,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소득세와 부유세였다. 그런 부유세를 폐지한다면 결국 프랑스 헌법의 기초인 서민과 부자가 골고루 잘 사는 평등 원칙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리라. 세금제도의 국제적 경쟁력 향상 못지않게 담세 능력에 따른 세금 부담의 공평성 유지와 추구도 중요하다고 본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복지사회가 출현하기 전까지 세금의 역할은 그저 국가 재정 조달에 한정됐다. 그러나 최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자 이를 치유하기 위한 소득 재분배 역할이 세금의 더 중요한 목표로 대두했다. 심지어 미국 민주당도 부유세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와 증여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정도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속ㆍ증여세를 폐지한다면 국민이 과연 얼마나 지지할까.


프랑스에선 부유세 부활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세금을 함부로 정권의 입맛에 맞게 조리한 대가치고는 정치ㆍ사회적 비용이 크다. 1년에 몇 차례 세법을 손바닥 뒤집기 식으로 개정하는 우리나라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모름지기 세금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거두고, 사회적 평등 가치의 실현을 위해 소득 재분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조세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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