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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인기남 변신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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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누군가 청춘은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했지만 나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의 20대는 다소 ‘찌질’ 했었다. 적어도 연애 부분에선 그랬다. 학창 시절 내내 제대로 된 연애를 한 기억이 없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랬던 비인기남이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된 이후인 30대 중반에는 오히려 인기남으로 180도 바뀌었다. 만나는(?) 이성마다 웃음 띤 얼굴로 호감을 표시하는 듯 했다. ‘아 뒤늦게 나의 매력이 폭발을 하는구나. 연륜이 쌓여야 매력도 발산이 되는구나’ 싶었다. 고백하자면 ‘결혼을 너무 일찍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 때도 있었다.

이 같은 착각이 깨진 것은 10여년 정도 지나서였다. “오렌지를 먹은지 얼마나 오랜지…”, “바나나를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는 류의 아재 개그에 맞은 편에 있던 이들이 포복절도를 하는 모습을 볼 때만 해도 내가 대화를 재미있게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주 주말 집에서 같은 농담을 하자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돌아온 것은 핀잔이었다. 바깥에선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자 “왜 그런 줄 정말 모르냐”는 반문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십수년 전 그녀들은 키 작고 배 나온 기혼 남성이 매력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잘 보여야 할 위치에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나온 배에다 머리숱까지 옅어진 아저씨의 아재 개그에 파안대소한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며칠 전 청와대 고위 공직자가 말실수 하나로 옷을 벗은 사건 때문이다. 한 강연에서 “청년과 5060세대는 취업 안 된다고 불평하지 말고, 험한 댓글 달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말한 지 불과 하루만이었다. 정책에 대한 논란에도 굳건하던 자리가 말 한마디에 날아간 셈이니 그야말로 ‘설화(舌禍)’다. 이 공직자 외에도 잊을만 하면 고위직이나 유명인들의 ‘설화’가 화제가 되곤 한다.

왜 그럴까. 당사자들은 이런 평가가 억울하겠지만 결국 권력에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찌질남’이 나름 매력남으로 바뀌었다고 착각한 시기는 미약하지만 ‘갑’의 위치에 있던 때였다. 언젠가부터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일도 많아졌다. 부장이 되면서는 회의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떠들고 있었다. 그래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줄 알았다. 오직 집에서만 예외였는데 처음엔 아내와 아이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신나게 바깥에서만 떠들었다. 회식 자리는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두서없는 말을 경청해주는 것은 대부분 권력이 미치는 범위 안이다. 권력이 큰 사람일수록, 유명할수록 ‘설화’를 입을 확률이 그만큼 높은 셈이다.


설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덕담을 건넨다. 여기서 마무리 되면 좋은데 덕담은 훈계와 잔소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집안의 권력자(연장자)들의 일장연설이 시작된다. “공부는 잘하고 있니?”, “취업은 됐니?”, “결혼은 언제?” 등의 안부(?) 확인으로 시작해 “요즘 젊은 애들은 고생을 몰라. 힘든 일은 안 하려 하고…”, “결혼도 안 하려 하고 결혼을 해도 애를 안 가지니 큰 일”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그러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등 정치·경제 이슈까지 나오면 권력자들간의 언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천냥 빚을 갚는 말도 있지만 남을 아프게 하고, 자신까지 해치는 말도 있다. 특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이들의 말이 그럴 확률이 높다. 공적 자리에서 말실수가 자리를 잃게 하듯이 집안에서 말실수는 가정의 화목을 깰 수 있다. 말을 잘한다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이번 설에는 입을 닫고 귀와 지갑을 열어보는 게 어떨까.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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