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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물관이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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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고려건국(918년) 1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이라는 특별전시회를 감상할 기회가 있어 실로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했다. 나에게 박물관이란 인적이 드문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그리고 인류학 분야의 문화재 등을 단순하게 시대별로 전시해놓는 다소 따분하고 정적이며 조용하게 행동해야만 하는 장소였기에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다. 전시의 내용과 기획 그리고 공간연출도 박물관 중심과 편의에 의해 지극히 정형화돼있어, 방문객 입장에서는 마치 최종회 내용을 알고 시청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전시의 형식과 결말이 쉽게 예상되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박물관 전시에 대한 특별한 흥미도 많지 않았으며, 자주 찾아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억을 가지고 도착한 박물관 정문에서부터, 나의 뇌리에 있던 예전 박물관이 더 이상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꽤나 추웠던 평일 오후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외부 공간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야외카페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장난을 치며 사진을 찍는 등 놀이와 휴식공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전시실 안에서는 부모님 손을 잡고 입장한 초등학생들부터 학교 과제를 위해 방문한 듯한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중장년 단체 관람객들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어울려 각자의 방식대로 전시를 감상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보다 박물관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 부분은 관람객 눈높이에 맞는 전시구성과 연출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역사성에 초점을 둬 일방향적이고 나열식 전시가 아닌 공간별로 테마를 달리 구성해 한 권의 고려시대 이야기책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시물에 대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관람객의 수동적인 참관만을 권유하는 것이 아닌, 관람객과 전시물 사이에 상호작용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유도하고자 IT를 활용한 장치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고려시대 차(茶)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입체적으로 연출한 다점(茶店)공간에서 나오는 영상과 음악 그리고 그 공간에서만 맡을 수 있는 녹차의 향기는 박물관이 일차원적인 전시공간에서 벗어나 다차원적인 복합문화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테마별 공간에서도 증강현실(AR) 기술을 접합한 영상 활용으로 고려시대상을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박물관의 친절함도 있었다.

나아가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을 많은 유관기관과의 협력적인 연계 성과물도 눈에 띄었다. 국내외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차용하는 정도에서 벗어나 역사와 종교 전문가, 예술가, 교육자 등이 함께 문화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등 박물관이 주(主)가 아닌 관람객 중심의 양방향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체된 박물관이 아닌 누구나 언제든지 박물관에 방문할 수 있어서 복작거리며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성과도 있었다.
고려 건국 1000년 해이던 1918년은 일제강점기 시절로 찬란한 고려 1000년을 기념하지도 못했으며, 그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폐허가 된 고려의 궁궐터 개성 만월대 사진이 전시회 마지막 공간에 배치돼있었다. 아픈 역사를 지닌 그 사진이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전달하며, 나아가 또 다른 100년 동안 고려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박물관의 존재 가치를 재정립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호를 활짝 열고 현 트렌드에 맞는 기술 활용 등을 통해 많은 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며 양방향적 소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의 역활을 기대해본다.

정원준 수원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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