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반성문/이영광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시 열심히 쓰는 이들은 많고
나는 요즘 쓰지도 못하니
뭐라도 해야 한다면
반성문을 잘 쓰고 싶다
어렸을 땐 한 번도 반성하는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
나이 들어선 아예
쓰지 않았다
두 눈을 똑똑히 감고
내가 뭘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아니,
무엇을 했는지 금세
잊어버렸다
사는 게 어려서 쓰던 반성문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꺼내 읽는 일 같을 때
고쳐 쓰고 고쳐 쓰는 일 같을 때
하얗게 정신을 차리고,
잘한 일 잘못한 일을 잘
말해 보고 싶다
내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나
한번 잘 써 보고 싶다
[오후 한 詩]반성문/이영광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 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반성 좀 하고 살자는 것이다. 아니 "내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나"라도 제대로 알고 살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렇긴 한데 이런 괜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성문의 원본이라 할 수 있을 어렸을 때 쓴 반성문이 실은 "한 번도 반성하"지 않은 상태의 것이라면 그것을 지금 와서 "꺼내 읽"고 "고쳐" 쓴다 한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객쩍은 질문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원리주의자의 매몰찬 편집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생에 원본이라 할 수 있는 게 어디 따로 있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고쳐" 쓰고 재삼 반성한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맥락은 문득 시 쓰기, 그것과 겹친다. 반성의 지속은 윤리와 내면을 갱신하고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시적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