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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계율 어겼지만 불교 부흥시킨 수행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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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빈의 '구마라집 평전'

[남산 딸깍발이]계율 어겼지만 불교 부흥시킨 수행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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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승려 구마라집 中 요흥왕과 참배날 탑 위 궁녀에 반해 망상 빠져
치욕 감내하며 바늘 스스로 삼켜 잡음 없애…복잡한 특성과 매력 주목해 심리 묘사

"구마라집, 正大하고 崧高한 사람…다사다난한 인생 딛고 더 큰 경지로"

중국 후진의 제2대왕 요흥은 장안성 영귀리에 7층 부도(浮屠)를 세웠다. 백성에게 선을 보인 날, 구마라집과 함께 방문해 참배했다. 박달나무로 제작된 주칠(朱漆)문. 문틀 위 오행(五行)에는 금 못이 박혔고, 문고리도 금으로 입혀졌다. 각 층의 네 첨각에는 금령이 달렸는데, 크기가 항아리만 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장식에 구마라집은 감탄했다. "이처럼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부도는 본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그는 향을 올리고 탑을 돌았다. 석탑 두 번째 층 창에서 젊고 아리따운 궁녀가 창밖으로 꽃을 뿌렸다. 구마라집을 보고 생긋거렸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팔은 눈처럼 하얗고, 봉긋 솟은 가슴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구마라집은 그녀를 잊지 못했다. 막 번역을 마친 '유마힐소설경'을 강설하면서 심각한 자괴감에 빠졌다.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일체 중생심의 본래 모습의 더럽지 않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바리여, 망상이 더러움이요 망상이 없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그릇된 생각은 더러운 것이요, 그릇된 생각이 없으면 곧 깨끗한 것입니다. 아(我)를 취함이 더러운 것이요, 아(我)를 취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깨끗한 것입니다.' 무엇을 망상이라고 합니까? 죄는 본래 무상이나 제멋대로 상을 만들어 내니 이것이 망상입니다. 망상이 스스로 더러움을 만들 뿐 이(理)의 허물이 아닙니다. 모든 법은 다 망상에서 비롯되었으니, 제법은 모두 망견(妄見)이고, 망견 때문에 그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마라집은 더는 강설을 이어가지 못했다. '망상이 더러움을 만든다'라는 말에 정곡을 찔렸을 거다. 부처님은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중생이 더럽다"라고 했고, 유마힐은 "망상이 더러움이고 망상이 없는 것이 깨끗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두 말이 모두 정확하다고 풀이했다. 그런데 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마구니. 틈만 나면 머릿속을 파고드는데, 이성과 지혜로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영귀리 부도에서 만난 궁녀가 계속 눈앞을 아른거렸다. 공빈 화둥사범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는 저서 '구마라집 평전'에서 구마라집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어린 아기 둘이 어깨 위를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따끈한 아기 엉덩이가 양 어깨에 착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갑자기 온몸이 바싹 마르면서 더워졌다. 몸속에서 참기 힘든 기운이 뻗쳤다. 욕장(欲障)이 엄습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거센 홍수 같았다. 불교의 이치와 계율이 이 거센 물결을 당해내지 못했다. 오직 여인의 몸만이 그것을 해소시켜 정신과 육체를 평정하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저자는 구마라집을 '정대(正大)하고 숭고(崧高)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모순적이고 복합적이다. 승려이되 승려가 아닌 자, 중국 불교사에서 유일무이한 이교도, 불세출의 불학 대사지만 계행이 어긴 수행자. 구마라집은 믿기 힘들 만큼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면서 수행자로서 겪기 어려운 치욕과 모욕을 숱하게 감내했다. 현실에 꺾여 뜻을 접지 않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숨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비구의 계율을 어겼다고 주변의 수군거림을 받을 때도, 세속의 권력자에 의해 파계할 때도, 무도한 전진의 장수 여광에게 조롱당할 때도, 음계를 어긴 스승에게 반감을 가지며 제자로부터 대우를 받지 못할 때도 그러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생긴 흠이 더 큰 경지로 이어지는데 주목한다.

"천재는 제멋대로 행동하기 십상이고 소소한 규율을 닦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과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정신이야말로 학술 연구와 예술 창조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중략) 구마라집이 말한 대로 한평생 홀로 엄격하게 계율을 지킨 자들 중에서 몇 명이나 불법을 크게 흥하게 했는가? 불교가 계율을 만든 근본 목적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갈고 닦아 아라한과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다."

궁녀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 구마라집은 요흥의 배려로 강경을 중단할 수 있었다. 황제를 따라서 황급히 초당사를 빠져나갔다. 얼마 뒤 내시가 젊고 아리따운 궁녀 한 명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영귀리 부도에서 꽃을 뿌린 그 궁녀였다. 구마라집은 급하게 궁녀를 끌어안고 한바탕 몸을 거세게 움직여 욕장을 해소했다. 견디기 힘들었던 긴장이 사라지자 몸이 한결 편안해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그는 궁녀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조용히 유마힐소설경에 대한 해석을 떠올렸다. 저자는 이 일화에서 구마라집의 생각을 유추해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의 복잡한 특성과 매력을 전하면서 절대적인 잣대가 적용될 여지를 최소화한다.

'내가 비록 불교의 이치에 밝지만 더러움을 물리칠 방법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망상이 빚은 결과이지 불교의 이치에 밝지 못해서 빚어진 결과가 아니다. 지금 승복을 벗고 이 궁녀와 음사를 치러 다시 계율을 범하고 말았으니, 무릇 이 일체의 더러움은 모두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일곱 살에 출가한 후로 지금까지 모두 오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망상이 있고, 마음의 본래 모습에 더러움이 있어서 지옥에 떨어질 음죄(淫罪)를 또다시 범했다. 나는 비록 명망이 있지만 덕은 높지 않다. 부처님의 계를 어겼을 뿐 아니라 어머니께서 그해에 해 주신 간절한 바람도 저버렸다.'

요흥은 혼란한 그에게 도리어 기녀 열 명을 하사했다. 불법의 씨앗이 후대에도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구마라집은 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렸다. 밖에서도 위엄과 명망이 곤두박질쳤다. 그는 승려들 앞에서 바늘 여덟아홉 개를 입안에 넣고 삼켜 잡음을 없앴다. "이 빈도가 기녀 열 명을 데리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죄를 지은 것이오. 하지만 도행이 뛰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기녀 열 명을 거느릴 수 있겠소? 만약 이 바늘을 입에 넣어 삼킬 수 있으면 여자를 거느리는데 방해될 것이 없을 것이오." 구마라집은 바늘을 삼켰을까. 여하튼 그의 목은 사흘간 고통에 시달렸다. "죄를 지었다. 부처님께서 내게 내리신 벌이다. 색(色)의 계율을 어겼을 뿐 아니라 남을 속였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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