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초겨울. 중국 베이징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내게 언니가 갑작스레 서울 소식을 전했다. "너 걱정한다고 엄마는 말하지 말랬는데,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싸구려 고깃집에서 밥을 먹던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예정됐던 연수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모친은 돈 되찾기를 포기하고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 오히려 내가 "그 돈이 어떤 돈인데"하며 언성을 높였고, 보험금이라도 압류해야하는거 아니냐 안절부절했다. "먼저 안 사람들이 가게 고기 한 점 까지 싹 다 가져갔더라". 이후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가족 누구도 그 날 얘기를 하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을 체감할 때 마다 그 집을 저주할 뿐이었다. 풍비박산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저녁 밥상 자리는 꽤 오랫동안 싸늘했다.
최근 연일 터지는 연예인 가족 사기설, '빚투(나도 떼였다)'라 불리는 채무 스캔들 기사를 볼 때마다 14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나와 내 가족은 지금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 일을 웃으며 말하지 못한다. 가해자는 돈을 갚지 않은 '숫자'로 그때의 일과 피해자들을 떠올리겠지만, 나의 모친은 자신의 실수로 가족들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건'으로 당시를 되짚을 것이다. 나는 다만 조용히, 그 집의 아들 딸들이라도 유명인이 돼 나타나 주길 바랄 뿐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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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직장 잃을 위기에 놓였다…한국 삼킨 초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