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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흰색 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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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슬며시 만들어진 악법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악법이 탄생하기 전에 조치를 취해 탄생 자체를 막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대부분의 악법은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실 정책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악법이 시행되면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고 대부분 서민을 대상으로 한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 3개월 전 대부분의 국민이 모르게 탄생한 악법 중의 하나가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에 도로 흰색 실선 차로 변경 시 발생 사고를 중과실에 포함시킨 것이다. 우리가 도로에서 항상 보는 흰색 실선에서 접촉 사고가 발생해 약간의 부상자라도 발생하면 중과실 항목으로 구분돼 무조건 형사 문제로 처리가 된다. 결국 검찰 송치와 더불어 최소한 벌금 전과가 돼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이 항목은 수년 전 대법원까지 간 유사 사안으로 검찰의 실선 정책에 대한 경찰의 합의로 만들어졌다. 당시 심각한 현장의 결격 사유와 문제점을 알고도 국민도 모르게 시행하기로 해 더욱 문제가 크다.
그렇다면 왜 이 항목이 문제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도로 흰색 실선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규정상 터널이나 교량, 지하차도 등 차로 변경 시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금지라는 항목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세부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무작정 필요에 따라 현장에서 판단하고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점선과 실선의 길이가 제각각일 뿐 아니라 끼어들기 금지 등을 위해 1㎞ 이상을 그려놓은 곳도 있다. 다른 도로 표시와 함께 그려져 있어 운전자가 혼동을 일으키도록 만든 곳도 많다. 흐리거나 지워져 있기도 하고 점선으로 보이는 곳도 많으며 일부는 밤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흰색 실선의 무규정과 의미 없는 곳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운전자들은 흰색 실선의 의미를 점선과 달리 차로 변경을 지양하고 좀 더 조심하라는 것으로 인식하는 정도다. 위반 시 사고가 나면 민사적으로 가해자가 돼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다음으로 흰색 실선 항목의 중과실 포함 시 전제 조건으로 언급한 부상자 발생이라는 조건을 보자. 국내의 경우 교통 사고 시 부상자 발생의 기준으로 삼는 진단서 발행은 도를 넘어 윤리적 개념이 무너진 상태다. 현재 사고의 60% 정도가 목만 아프다고 해도 2주짜리 진단서를 끊고 있다. 일단 접촉 사고가 발생하면 습관적으로 진단서를 끊고 본다. 일본의 경우 교통 사고 발생 시 진단서 발행은 약 6%에 불과하다.

흰색 실선 차로 변경 사고 시 부상자 발생 조건은 대부분 만족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2400만명의 운전자가 이 항목으로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미 발생하고 있다. 까딱하면 모두가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약 3개월 전 이러한 지침이 내려오면서 이미 일선은 혼돈의 상태다. 예전 같으면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민사로 간주하고 보험으로 모든 것이 처리됐지만 이제는 형사 처리로 바뀌면서 일선 경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운전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전과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도리어 보험 사기범들이 이를 기회로 삼고 있어 더욱 심각성이 크다. 실선에서 적당히 앞차와 거리를 두고 진입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추돌하면 끼어든 운전자가 가해자가 돼 형사 처벌을 빌미로 단단히 한 몫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관련 법은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는 만큼 절대로 시행되지 말아야 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잘못된 악법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이제는 '아니면 말고' 식의 악법은 나오지 말아야 하며 담당자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김필수 자동차연구소장 · 대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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