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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넷플릭스와 토종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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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렉서스가 상징하는 세계화 시스템과 올리브 나무가 가리키는 오래된 문화, 전통, 커뮤니티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묘사한 명저였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1999년 내놓은 이 책은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는 때 잔뜩 숨죽였던 세계 시민들에게 필연적인 새 체제를 맞으라는 각성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이제 20년 후 렉서스는 넷플릭스로, 올리브 나무는 한국 토종 구상 나무로 바꿔봄직한 상황이 찾아왔다. 제조 자동차 브랜드가 4차산업혁명 선두 주자 콘텐츠 서비스 업체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것부터가 뉴스다. 세계화 판도 안에서 기어이 벌어진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라고나 할까. 렉서스 이후 노키아, 애플, 갤럭시, 샤오미, 화웨이쯤으로 넘어갔다가 이윽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슈퍼 플랫폼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진정한 왕좌는 자기 콘텐츠와 큐레이션 서비스 라인업을 내세워 전 세계인들과 직거래를 트고 있는 넷플릭스라고 봐야겠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거나 확보해 가입자들에게 맞춰주는 유료 수익 모델로 성공했다. 경쟁자 유튜브는 단순 유통 도매상에 가깝고 넷플릭스는 전문 메뉴를 가진 프랜차이즈 가게 영업 위주다. 유튜브가 프라이스 클럽 코스트코라면 넷플릭스는 자기 물품를 내다 파는 이케아나 스타벅스와 같다.

때문에 새 주역 넷플릭스가 리드하는 문화 서비스 세계화가 렉서스의 경제 세계화를 교체하는 과정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결국 소프트 파워로 옮겨온 세계화 확산은 범위부터 남다르다. 넷플릭스는 현재 지구상에서 중국과 북한, 시리아 IS 지역만 제외한 190여개 나라에 진출해 있다. 약 1억4000만명 가입자를 확보했으니 이른바 '천만 영화' '쌍천만 영화' '3천만 드라마'가 매일 일상적으로 집계될 수도 있을 광대한 인프라를 닦은 셈이다.

한국 투자 내역을 보면 2017년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 제작비 전액 5000만달러(약 579억원)를 부담한 것을 시작으로 김은숙 작가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판권을 약 300억원에 구매해 TV 방영을 성사시켰다. 유재석의 '범인은 바로 너', 유병재의 '블랙코미디' 등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방영했다. 화제작 김은희 작가의 신작드라마 '킹덤(2019년 1월 상영예정)'에는 200억원 제작비 투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 문화 서비스 세계화는 지금 복병을 만났다. 별안간 쇄국주의 우박이 쏟아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예능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수백억 원씩을 유입해왔지만 환영 아닌 견제와 비난이 뭉텅 뭉텅 날아드는 얄궂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외국 자본 침탈로 보는 이해관계당사자들의 무차별 발포가 시작된 것. 지상파 방송사들과 일부 유료 방송사, 영화사, 통신, 인터넷 포털 업체들이 극렬하다. 규제 기관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도 수익배분과 망 개방, 홀드 백(hold back) 유통 체제 파괴 등 콘텐츠 산업 역차별 논리를 내세워 플랫폼 외세 배격에 나섰다.

그럼 과연 넷플릭스는 포식자인가. 미디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엄청난 제작비 판돈에 우리 창작자, 생산자, 종사자가 죄다 넘어가게 생겼단 말인가. 경제 소비와 달리 문화 소비는 세계화를 거부하고 문화적 장벽과 할인율 온실 안에서 계속 보호받기만 해야 하는가? 몰려들 아마존, 애플 플랫폼 서비스도 몽땅 묶어 세금 폭탄 안기고 쫓아내야만 직성이 풀리겠는가.

논란이 너무 뜨거워지고 있다. 잠깐 눈을 돌려 한국 토종 구상 나무에게 물어보자. 전 세계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는 나무가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 전나무인 '구상나무'라는 사실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구상 나무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국내에선 외려 멸종 위기로까지 몰렸으나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울창하게 서식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얘기에서 말이다.

우리 문화 콘텐츠가 곧 토종 구상 나무이고 새로운 해외 서식지가 넷플릭스라고 볼 순 없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겐 분명 이득이다. 기분이야 좀 불편하다 해도 우리 콘텐츠를 더 튼실하게 키워 한류 영역보다 드넓은 세계로 뻗어나갈 새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곧바로 소비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규제 당국이나 기득권 사업자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것 한류 콘텐츠 구상 나무를 뉴욕, 워싱턴, 베를린 집집마다 세워놓아 문화경제 바람을 일으킬 궁리를 좀 해보자. 넷플릭스와 구상나무가 알려 주는 값진 지혜를 어이없이 내치지 말고.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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