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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때 아닌 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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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2월. 무술년 '개'의 해가 지나가고 있는데, 지난달은 '닭'이 화제였다. 모 IT기업 회장의 '산 닭 잡기' 뉴스로 시작하더니 나약한 사병들의 군대를 '병아리' 군대라 하는 뉴스도 회자되었고, 뒤에는 치킨업계 2, 3위 간의 '닭싸움'까지….

예전의 한 강연회가 떠올랐다. 강사는 어느 예비역 장군의 전원생활에 초대되었다 한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장군은 식사 준비를 위해 마당 한편의 토종닭을 생포(?)해 외출 채비를 했다. 강사가 어디 가시냐고 물으니 장군이 대답했다. "제가 닭을 못 잡아서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난감'했다는 것이다.
그런 장군님을 심성 고운 분이라고 해야 할지,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라 해야 할지. 그리고 뉴스에 회자되는 그 용맹한(?) 회장님은 회장실이 아니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보내드려야 하는지. 화제가 된 '병아리' 군대의 병사들을 회장님 회사의 맷집 좋고 닭도 잘 내려치는 직원들로 교체하는 것이 나으려나 상상도 해보았다.

우리 젊은이들이 어쩌다 군에까지 가서 병아리라 불리고, 직장에 가선 옆자리의 동료가 회장에게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무감각하게 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 또 다른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자녀가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이나 공부 성화 때문에 요즘 학교 운동장이 비어간다는 뉴스였다.

유의미한 관계가 감지된다. 우리 부모들의 성화가 학교 운동장을 '잡초밭'으로 만들고, 군대 연병장을 '닭장'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일부 군에서는 적군보다 부모들 민원이 무서워 실제 수류탄 투척훈련을 못하는 곳도 있고, 지뢰제거를 위해 부모 동의서를 받는 곳도 있다하며, 심지어 장교들이 병사들 약까지 시간 맞춰 챙겨 주는 곳도 있단다.
그러나 사회는 이렇게 부모들이 자녀들을 금이야 옥이야 길러 주면 그들을 잘 받아 모시고, 힘든 일은 빼주고, 마음이 아프다면 열외도 시켜주고 하면 좋을 텐데. 사회라는 곳이 제 코가 석자라, 한번 들어오면 힘든 일도 참아야 하고, 욕도 먹어야 하고, 운이 나쁘면 석궁이나 일본도로 짐승도 잡아야 하고, 재수 없으면 '빳따'(?)도 견뎌내야 하니….

물론 과장은 있다. 그래도 사회는 틀림없이 거친 곳이다. 전부터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했다. 사회는 제 힘으로 과업과 미래와 인생을 개척할 젊은이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녀들 대부분은 온실 같은 가정을 거쳐, 잡초 무성한 운동장을 지나, 어쩌면 긴장감조차 없는 닭장 같은 연병장을 통과 또는 바이패스해 사회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조우해야 할 상대는 공부, 입시, 군대, 취업만이 아니다. 정수는 이 이후다. 상대는 '알파고' '왓슨'으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들. 그들에게는 주 52시간 근로도, 최저임금도 없다. 그냥 돌리면 강력한 것들을 쏟아 낸다. 불평을 늘어놓거나 부모들 눈치를 봐야 할 일도 없고, 태업도 파업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경쟁해야 할 인간 라이벌 들도 국내에 국한하지 않는다. 기본이 튼튼한 일본 젊은이들도, 역동성 넘치는 중국 젊은이들도, 국제 감각이 남다른 서구의 젊은이들도 있다. 그리고 보상의 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적극적인 아시아, 아프리카의 젊은이들도 있다. 이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이제 젊은이들은 시험점수나 스펙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학교 운동장이나 군대 연병장도 대충 흘려서는 안 된다. 또 부모의 품안에 안존해서는 더욱 안 된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고생도 해보고, 어려운 일에도 도전해 보고, 더 많은 실패와 눈물을 맛봐야 한다.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은 이런 일을 도와야 한다. 그것만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와 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더 머뭇거리다간 우리 모두 '닭'이 되어 버린다. 아니면 '닭' 쫓던 '개'가 되거나, 그 뒤에 오는 '돼지'가 되거나.

임호순 충남삼성학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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