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고보 교사였다. 회식 자리에서 그녀, 기생 김진향을 만났고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시절, 나타샤는 시인을 사랑했고 눈은 푹푹 나려 온통 흰 세상에서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좋아 울었다. '하얀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백석이 남한에서 낸 시집은 '사슴' 한 권, 그나마도 100부만 출간됐다. 시인 윤동주는 '사슴'을 구하지 못하자 도서관에서 빌려 밤을 새워 필사했다고 한다. '별 헤는 밤'을 비롯한 윤동주의 작품들은 백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故) 노회찬 의원도 백석의 시집을 찾았었다. 그는 2012년 9월, 트위터를 통해 절판된 백석 시집을 헌 책으로 주문했더니 대구의 한 책방에서 보내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 책이 이 밤 저에게 위안이 될 지…"라고 했다. 통합진보당을 탈당하는 기자회견을 한 날이었다.
백석은 북한에 있으면서 창작보다는 번역 활동을 하다가 국영협동농장에서 양치기로 일했다. 이미 1962년 절필해 1996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시절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돼 29세의 나이에 옥사했다.
이 세상에 맑고 정(精)한 존재들은, 대체로 가엽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흰 바람벽이 있어' 중)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대자보로 사직 알린 서울대병원 교수..."韓의료,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