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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대체복무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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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군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집단을 목격했다.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수감자였다. 그들의 수감 생활에 대해 궁금증이 들었다. 교도소 관계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교도소행을 택한 이들의 생활태도는 아주 좋다고 했다. 수감 생활을 훈장처럼 여긴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신념을 가진 이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을 보며 이들의 수감 생활이 병사들의 생활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는 대장 위에 존재한다는 병장도, 군기 잡는 상병도 없다. 가혹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 야간 근무도 없다. 숙면을 취할 수 있다. 훈련도 없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눈을 부라리는 유격 훈련도, 피 터지고 알 배고 이 갈리는 사격술예비훈련(PRI)도, 물집 잡히고 발 뒤꿈치가 까지는 행군에서도 자유다. 각종 사건 사고도 피해갈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교도소 내 대우도 호전됐다. 수감태도가 좋다 보니 일반 수형자에 비해 행동이 자유롭다고 한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징집제라는 국가의 정책을 거부한 이유로 수감 생활을 한다지만 어쩌면 이들에게는 종교적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헌법 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대체복무가 추진되고 있다.
대체복무자는 군복무 대신 공공기관이나 공공시설에서 일하게 된다. 큰 책임과 사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군에 가는 이들은 이를 특혜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면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에 비해 길어지는 게 당연하다. 혜택이 있는 만큼 희생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병역특례 예술체육요원, 공중보건의사, 징병검사전담의사, 공중방역수의사, 공익법무관,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등도 모두 현역병보다 장기간 근무한다. 육군에 비해 해군ㆍ공군의 복무 기간이 긴 것도 이런 형평성을 감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소수 의견 보호는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다. 그렇다고 해도 주류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모병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병역은 공평해야 한다는 사회통념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지난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땄지만 일부 선수들의 병역 면제로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이 역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사임을 발표한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 감독이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지 않고 병역의무를 다했다면 시대적 흐름과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실수를 했을까.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스스로 대체복무를 선택했다면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보다 더 노력을 하겠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여호와의 증인 등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36개월간 교도소 합숙근무를 추진하겠다는 국방부의 정책 방향은 수긍이 간다.

기간과 합숙 등이 논란이라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범법자가 될 상황에서 면죄부를 받았다면 그만큼 내놓을 것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의무에 따라 입대하는 이들과 형평성이 맞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다음 주 만나 대체복무제 시행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한다. 최 위원장도 '국보' 선동열 감독처럼 국민의 정서를 착각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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