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두 차례에 걸쳐 빈 포위전을 결행한 16세기라면 문제가 다르다. 헝가리를 제압한 오스만은 1529년과 1683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심장 빈을 포위한다. 유럽인들은 1453년 유럽의 영혼과도 같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오스만은 공포 자체였을 것이다. 이시대의 유럽인들에게 빈은 유럽의 동쪽 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리스본에서 빈까지는 유럽, 즉 (유럽인의 생각에는) 문명화된 기독교 세계의 끝에서 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기 저 조각들이 뭐죠?” 내가 말한 조각이란 한 줄로 서 있는 작은 나무 조각품들이었고, 그 첫 번째가 리스본의 벨렝 탑이었다. 그 뒤에 유럽의 다양한 건물과 기념물을 표현한 조각품들이 뒤따랐는데, 그것은 어떤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 16세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앙 3세가 포르투갈 왕좌에 있던 1551년에 한 코끼리가 리스본에서 빈까지 여행한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사라마구, 지은이의 말)
사라마구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솔로몬과 호송단의 이동 과정을 적어 나간다. 여행(Travel)과 곤경(Trouble)은 한 아비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던가. 먼 길을 가는 동안의 우여곡절에서 코끼리를 둘러싼 인간들의 허영과 위선, 권력의 속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솔로몬은 "경박 때문에 존중을 희생하고, 미학 때문에 윤리를 희생하는" 인간에 떠밀려 가면서도 때때로 인간보다 더 절제된 행동을 보여준다.
2009년 9월 8일, 스웨덴 한림원은 사라마구를 포르투갈 출신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한다.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 아이러니가 풍부한 우화적인 작품으로 허구적 현실의 묘미를 맛보게 해주었다." 부산외국어대 김용재 포르투갈어과 교수는 "사라마구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네 축은 '시간', '초자연', '담론의 연속성', '여행'"이라고 분석했다. 사라마구는 과거에 비판적이지만 한편으로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두 가지 논리에 충실했다.
사라마구는 1922년 오늘 포르투갈의 아지냐가에서 태어나 2010년 6월 18일 스페인의 티아스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주제 소자, 어머니는 마리아 피에데드. 사라마구는 아버지 가문의 별칭이다. 아버지의 실제 성이 아니라 별칭을 사용한 데서 세계와 인생을 바라보는 사라마구의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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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절반 "어버이날 '빨간날'로 해 주세요"…60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